수요 매거진 11화
수요일입니다. 찌는듯하게 덥더니 오늘은 또 선선한 가을이 다가온듯합니다. 오늘도 출근하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뉴스레터가 포화상태여서 이메일이 꽉 찼지만,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어 열심히 읽던 차에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이 졸린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였을까요?
대퇴사(Great Resignation) 시대다. 올해만 해도 아는 지인 5명이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가 이혼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다. 미국 근로자의 절반이 조용한 사직에 동참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갤럽 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이란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태도다. 미국 20대 엔지니어인 자이들 플린이 틱톡에 소개한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신조어다.
근로자의 일에 대한 열정, 직장에서의 참여도 지수가 지난해 이후 하락세를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자기 일에 대해 즐겁게 생각하지 않고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1만 5천901명을 대상으로 한 6월 조사에서 3분의 1이 일에 대해 열정을 느끼고 참여하고 있다고 답했고, 20프로 미만은 적극적으로 일과 멀리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여름과 비교해 적극적인 참여도가 40퍼센트였던 때와는 달리 특히 35세 미만의 참여도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자이들 플린은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주어진 일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직장에서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조용한 사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열심히 해도 바뀌는 게 없다
한국인은 특히나 열심히 일을 한다. 폭우나 태풍이 몰아쳤을 때도 기어이 출근하는 탓에 K-직장인이라는 신조어가 세계적으로 퍼질 정도다. 이렇게 뼈를 갈아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몇 년이 지나고 몇십 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다. 그저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우리 가족이 살 집 한 채 조차 사기가 힘들고, 월급보다 가파르게 올르는 물가 탓에 나가는 돈이 더 많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정체가 되어있다는 이유로 몇 년째 제자리다. 회사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내 미래는 더더욱 안 보인다.
두 번째, 불공정하다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을 하거나 초과근무, 회식에 대한 기꺼이 참여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급여, 더 많은 혜택이나 승진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해 열심히 참여하는 직장인이 많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한 이유로 입사 동기라고 해도 누구는 승진에서 누락될 수 있고, 월급이 갑자기 삭감될 수 있고, 당황스럽게 퇴사를 권고받을 수도 있다. 그놈의 '회사 사정'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런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사회가 왔다.
세 번째, 더 이상 희망고문에 놀아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직원 몇 명이 퇴사를 했다. 남은 건 그들의 퇴사 이후 일에 대한 재분배. 이미 업무적으로 포화상태인 직원들이 반발하기라도 하면 '고통분담'이라는 이유로 일을 또 나눈다. 남는 사람만 손해인 것이다. 개인생활보다 업무를 중시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인 '허슬 컬처(hustle culture)'는 MZ세대에게 낯선 단어다. 오래 일하고 결과물을 내도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고문을 할수록 신뢰는 추락한다.
네 번째, 저 사람도 따지는데 왜 나라고 못해?
MZ세대가 들어와 가장 먼저 워라밸을 언급한다. 워라밸을 지키려 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일이 많으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업무분장에 있지 않은 일은 누가 하냐며 따지고 든다. 따지느라 본인 업무도 미룬 채 말이다. 이러다 보니 묵묵히 일하던 다른 직원들은 그야말로 호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열심히 하는 사람만 손해인 것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직원들을 보니 허무해지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도 사라진다.
다섯 번째, 회사 밖 삶이 더 재밌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을 챙기는 시대다. 회사 밖에도 할 게 많다. 테니스, 볼링, 골프, 승마 등 다양한 신체 활동과 더불어 느슨한 연대를 바탕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회사 밖의 세상의 참다움을 느낀다. 회사가 전부일 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업무 외 사소한 다른 일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며 스트레스만 받기 때문이다. 회사에 얽매이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할 게 많고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 자이들 플린
여섯째, 회사는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퇴직과 퇴사가 빨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임금이 줄어들거나 회사 사정이 안 좋으면 쫓겨날 수 있는 게 바로 다음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더 커진다. 공부하는 직장인을 직장인과 학생의 합성어인 '샐러던트(Saladent)'로 부르기도 한다. 불안한 고용환경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직 시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투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한다. 회사에 대한 기대는 날아가버린 지 오래다.
양치기 소년은 오늘도 거짓말을 되풀이한다
양을 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소란을 불러일으킨다. 동네 어른들은 소년의 장난에 속아 무기를 가져오지만 헛수고로 끝난다. 양치기 소년은 이런 거짓말에 재미를 붙여 몇 번이고 반복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를 들은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이 양치기 소년은 회사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지금은 힘든 시기지 않냐며 함께 노력하자고 사장인 내가 노력하는 거만큼 다 같이 노력하면 사정이 좋아질 거고, 나중에 성과급으로 확실히 챙겨주겠다고 몇 번이나 희망을 전해준다. 이렇게 거짓말을 계속하면, 나중에 진실을 말해도 직원은 믿을 수 없게 된다. 차라리 "회사 믿지 말고 네 살길 알아서 찾아라. 그 대신 워라밸은 보장해 줄게."라고 하면 더 신뢰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기 전에 생을 마감할 수 있고, 개같이 충성하다가 파양 당할지도 모른다. 갈아가며 충성했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할 집 한 채 못 구하고, 가파르게 오르는 밥값 충당조차 힘든 시대다. 짧은 인생 그보다도 더 짧은 회사생활에 내 인생을 걸기엔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조용히 사직한다.
<참고 자료>
- 연합 인포맥스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3038
- MZ직장인이 일하는 법? https://www.yna.co.kr/view/AKR20220831158500704
- "회사가 내 인생 책임져주지 않아.."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0&t_num=1360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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