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하고 안타까운 일도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많고, 답답한 일도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참 힘든 일 없이 마냥 좋아 보이네~ 이건, 그 사람이 힘든걸 티 안내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시점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책에 보면, '괜찮은 척하지 마라'라고 되어 있어요. 힘들고, 어렵고, 슬픈데, 사람들 만나면 가면을 쓴 채로, 괜찮은 척, 의연한 척하다가, 혼자 있으면 힘들어서 끙끙 앓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책에 보면, 힘들고, 슬픈 것에만 얽매여 있지 말고, 의도적으로 자꾸 웃고 ’괜찮은 척 생활하라’는 겁니다. 괜찮은 척 살다 보면 진짜 괜찮아진다는 거죠. 뭐가 맞는 걸까요?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저의 경우에 빗대어 보면, 내 진짜 상태를 드러내는 건, 어떤 사람 앞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요. 가깝고 믿음이 가는 사람 앞이면 감정이 솔직해지고, 약간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면 감정을 숨기는 거죠.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선 제 얘기도 잘 안 한답니다.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도, 안심이 되는 사람들 앞에선, 이런저런 표현을 해요. 이렇게 저의 감정 표현이 소수에게만 제한된 건 이유가 있는데요~
본인이 인생 살아보니까, 함께 슬퍼하는 건 의외로 쉬운데, 함께 기뻐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는 겁니다. 누군가 기쁜 소식이 있다고 전하면, 괜히 질투나 시샘부터 나고, 진심으로 축하가 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60세가 넘은 어르신이 그처럼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걸 듣고, 감동하면서 무릎을 치며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 여러 사람에게 내 솔직한 감정을 전하는 게 조심스러워졌어요.
내가 힘들 때, 기쁠 때,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힘든 일과 기쁜 일에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을까.
친구가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서 울어주고, 위로해주는 건 쉽죠. '너무 마음이 아프네...' 이러면서,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건네잖아요. 타인의 힘든 일은 나와 무관하니까요. '슬픈 일은 저 친구의 일이니, 내 일 아니니 다행이야, 난 위로만 해주면 돼.' 이렇게 단순해져요. 하지만,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면 어떤가요? 일단, 축하해~라고 말은 해도, 속에서는 축하보다 부러움이 먼저 생겨요. 이상하죠. 타인의 좋은 일은 나랑 연관되는 느낌이 들어요.
생겨나는 감정을 틀린거라고 할 순 없을 거예요. 질투, 시샘, 부러움, 이런 건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타인의 기쁜 소식에 질투나 부러움이 생기는걸 넘어, 그것 때문에 흔들리고 나를 자책하기도 해요. 그렇지 않고 싶은데 말이죠.
돈을 많이 버는 것. 취직, 결혼, 출산. 물론, 이 모든 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 공사다망한 일이 아닌, 내 마음에 진짜 와 닿는 기쁜 소식을 찾아봤으면 해요.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겐 기쁜 소식이 저렇게 많은데 왜 나에겐 없지, 이런 흔들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늘이 예쁘네, 가을바람이 좋네, 사랑받고 있네, 그래서 감사하구나.
물론, 나는 스카이캐슬에 들어가지 못하니 슬프다는 감정이 올라올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냥 흘려버리고
소식으로 만들지 말아야겠어요.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만
기쁜 소식으로 만들어보자고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