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희 Aug 19. 2024

비혼의 밥벌이



비혼이고 혼자 살면 세상천지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으면 정말 난감해진다. 수입이 끊기면 일단 지출을 줄이는 것으로 얼마간 버틸 있다. 그러나 비축해 둔 돈을 쓰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거나 해서든 돈을 벌어야 한다. 나는 책을 팔아서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10년 전 출판사를 하겠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딱 일 년간 최소한만 쓰고 살면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비했다. 참, 거기에는 책 1종을 제작할 예산도 포함되었다. 지출을 줄이려고 발품을 팔아 월세가 아주 싼 집을 구해서 이사도 했다. 그리고 몇 년 모은 자료로 일 년간 책을 써서 출간했다. 당시 나의 계획지금 생각해 보면 허황한 꿈,은 원대했다.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고, 블로그에 연재할 당시에 구독자도 금세 6~7만으로 늘어나고 해서 책이 출간되기만 하면 대박이 날 걸로 착각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제작비는 건졌다. 내 인건비는 넣지도 않았기에. 



사람은 어떨 때 변화를 꿈꿀까? 현재의 삶이 지겨워져서 변화를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꿈은 무엇일까? 어쩌면 근거가 희박한 긍정적인 환상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막연하긴 해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뭉게구름이나 솜사탕 같은 것일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계획일 수도 있을 테다. 나에게는 맑디맑은 초여름의 뭉게구름 같은 것이었다. 닿을 수 없어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어떤 것. 

미대를 나와서 화가로 살아보려 몇 년 애쓰다가 몇 가지 이유로 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 후로 글을 쓰고 그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넣어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다시 갖게 되었다. 잊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고, 더 잘해서 글을 잊고 있었던 거였다.   



변화를 시도할 때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까? 살면서 나는 어쩌면 행복감을 느끼는 만큼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물론 행복하지도, 두렵지도 않은 미지근한 마음 상태로 지내는 시간이 더 길긴 하지만. 닥치지 않은 일로 우리는 미리 두려워한다. 영영 닥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다. 그런 두려움은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더 억누를 수 없도록 간절해지면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긴 세월 꿈을 꾹꾹 눌러서 닫아 놓으면 발효가 되듯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시점이 있다. 그때는 억지로 억누르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뚜껑을 열어 꿈에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쉴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 내게 그 시점이 10년 전이었다. 



우리가 꿈꾸는 변화는 현재보다 나을까? 실질적으로 나아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마음은 생각보다 금세 변화한 삶에 적응했다. 온종일 책 생각을 하면서 생산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는 한가한 삶이 내 체질에 정말이지 딱 맞았다. 평생 그렇게 살라면 살 수도 있을 듯했다. 가끔은 터무니없는 희망에 가득 차서 혼자 흥분했고. 때로는 불현듯 스며드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기도 했지만 견딜만했다. 삶의 항로를 바꾸고 나서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활은 꽤 괜찮았다. 



과도한 자아도취도 지나치게 냉정한 자기 객관화도 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출판 분야의 현실을 몰라서 꾸었던 허황한 꿈에서 깨어났다. 부족했지만, 형편없지는 않았다는 약간의 희망도 얻었다. 내 첫 책의 실패 후에 그때 한참 이런 생각에 골몰했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남들이 전문가로 인정해 줄 만큼 잘하는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기도 한다고 치면 그래서 그것이 남들에게 필요한가? 책이 누군가에게 이로운가? 위로가 되는가? 그리고 내가 만든 책이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상념 끝에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의 방향이 확실해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포기하지 않아서.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글 쓰고 만들어서 밥벌이는 했다. 지금까지는 이랬는데, 앞으로는 어떡하나 요즘 고민이 많다. 세상이 변하듯 나도 변해야 하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감이 떨어져 더는 사람들이 사고 싶은 책을 못 만들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테다. 그때는 뭐 해서 먹고살지? 솔직히 지금은 모르겠다. 



미래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두려움은 우리 삶에서 애증의 동반자인 것을. 그렇다고 사람이 미래 걱정만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걱정에 파묻혀 살기에는 여름의 햇살이 너무 환하고, 마당의 녹색이 너무 선명하고, 얼어 죽을 뻔했던 걸 겨우 살려낸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이 너무 찬란하다.  


                    

       



이전 01화 머물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