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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희 Sep 16. 2024

촌집 살이


한 백 년 된 촌집을 사는 순간 돌아서면 통장 잔고가 스르륵스르륵 사라진다. 촌집을 혼자 수리하다 보면 고단함에 세상 근심도 어느덧 사라진다. 수리가 끝나면 비워진 통장 잔고는 다시 채워지지 않고, 사라졌던 근심은 스멀스멀 되돌아온다. 다행인지 아직 고칠 것이 태산이라 한동안일지언정 근심을 내게서 내보낼 기회는 널렸다. 



촌길과 물길

촌에서 집터를 볼 때 배산임수는 갖추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조건이다. 촌에서는 길과 물길이 집터의 필수 조건이다. 부동산 용어로는 도로와 구거라고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 물길은 상수도와 하수도를 다 말한다. 길이 있어야 상수도를 들이고 하수도도 뚫을 수 있으니, 길과 물길은 한 쌍이다. 내가 찾아낸 이 촌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가 한 십 년은 넘어 보였다. 온 동네 사람이 이 집에 쓰레기를 다 갖다 버렸는지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하수도와 정화조는 그럭저럭 쓸만했다. 문제는 상수와도 전기였다. 


촌에는 다양한 종류의 길이 존재한다. 도로로 등록된 길이 있고, 도로로 등록되지 않았으나 도로로 사용되는 현황 도로가 있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그것 말고 애매한 길이 있다. 반은 도로이고 반은 개인 사유지인 길이다. 25톤 트럭도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포장도 되어 있지만,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길의 반을 소유한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연히 상수도를 설치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집은 그런 애매한 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온갖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상수도를 설치했고, 일 년간 수도사업소에 전화해서 겨우 파헤친 길을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재포장했다. 


야신을 끼고 있는 이 촌집에서는 장마철에 산에서 콸콸 쏟아져 내려오는 빗물이 흘러갈 물길을 터야 했다.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을 만큼 질퍽했던 마당에도 빗물이 낮은 곳으로 잘 흘러가도록 물길을 터야 했다. 컬러강판 지붕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센 줄기도 모아서 역시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빗물받이를 달아야 했다. 촌집에 자리 잡은 지 한 삼 년 만에 이런저런 물길을 마침내 거의 다 텄다.  


지금도 억센 비가 쏟아질 때면 집이 떠내려가지나 않나 습관처럼 노심초사하게 된다. 물길은 수시로 막히니 물이 잘 흘러가도록 늘 살펴야 한다. 촌에서는 거저 얻어지는 게 한 가지도 없다.



촌집의 가치

생고생하지 말고 돈을 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 이 촌집은 조심해서 천천히 벗겨내야 할 신비한 베일로 가려져 있는 듯했다. 업자에게 돈을 주고 맡겨서 뚝딱 고쳐 살면 같았다. 옛 목수들의 솜씨와 땀은 내가 아니면 벗겨내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 모를 집수리를 직접 한다. 


집 뒤 북쪽으로는 나직한 야산이 있고, 뒤뜰이 있어야 할 그 앞쪽으로는 둔덕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둔덕의 흙을 다 떠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집 뒤에 방치되어 있으면 그저 잡풀만 무성한 흙더미에 불과하지만, 집 앞으로 퍼서 옮기면 양분이 가득한 화단이 될 것 같았다. 절반 넘게 삽으로 퍼서 손수레에 담아 흙을 옮겼다. 그 흙 속에 묻혔던 크고 작은 돌과 무거운 옛 구들장으로는 화단의 턱을 쌓았다.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개미처럼 쉬지 않고 한 삽 두 삽 떠서 옮겼다. 쓸모없던 그 흙은 지금은 집 앞과 옆으로 경계 구실을 하는 길고 풍성한 화단과 텃밭이 되었다.  


바깥채를 철거하고 나온 목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잘 씻어서 말린 백 년 좀 덜 된 목재는 주문 제작한 컨테이너 안에 잘 모셔져 있다. 남겨진 안채를 수리할 때 분명히 쓸모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의 선견지명은 적중했다. 먼저 옛날 아궁이 부엌을 수리하면서 제 쓸모를 찾았다. 부엌의 다락과 서까래의 흙을 다 털어내고 단열재를 채운 후에 얇은 자작 합판으로 막았다. 그 위에 바깥채의 서까래를 잘 손질해서 덧댔다. 제법 멋스러운 단열이 잘 된 서까래 천장이 완성되었다. 촌집의 천장을 조금씩 뜯어내고 그런 식으로 수리할 계획이다. 지난 겨울에 지금 부엌으로 쓰는 방의 천장에 덧대어져 있던 얇고 더러운 합판을 뜯어냈다. 백 년 된 먼지에 뒤덮힌 웅장한 기둥과 보가 드러났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울컥 감동이 올라온다. 백 년 전 이 집을 짓던 목수들을 향한 존경심에 목이 메고, 한옥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터진다.



촌집 화장실

정말 지저분했다. 견디기 힘들었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지 못해서 3년을 견뎠다.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촌집에 덧대어 지어진 화장실 내부를 새롭게 만들었다. 유튜브를 보고 공부를 마친 후에 공구를 사서 바닥과 벽을 뜯어내서 배수관과 수도관과 전기선을 묻었다. 벽돌을 쌓아 샤워실을 만들고, 타일을 붙이고, 변기는 위치를 옮겨 설치하고, 세면대를 설치하고, 세탁기를 설치하고, 옛날 창틀로 거울을 만들었다. 이 역시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수리가 내 촌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여서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그렇다.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서 걸린 기간을 계산할 수도 없다. 



언제 다 끝낼지 기약이 없지만, 나는 이 촌집의 가치가 다 드러날 때까지 기꺼이 고생할 생각이다. 이 촌집의 베일이 다 벗겨지면 나는 내 꿈의 고립된 집을 찾아 떠날 작정이다. 그때 이 집은 제 가치를 알아봐 줄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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