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했어도 내 공간에 사람들로 북적대던 시절이 있었다. 내 것을 무언가 내놓으면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공간이어도 되고 시간이어도 되었다. 그 경험은 나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썩 내키지 않을 때조차도 나를 찾는 이들의 부름에 응했다.
남겨진 관계
사람의 곁에 있고 싶어서 무작정 누군가의 곁을 서성이며 안달 내던 마음은 이제 담담해졌다. 잊힌 존재로 고립되지 않으려고 불안해하던 마음은 잠잠해졌다. 어느덧 외롭지 않게 된, 혹은 외로움이 두렵지 않게 된 나는 내키지 않는 부름을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자 저절로 관계가 가지치기 되었다. 나를 뒷배경을 채워 줄 요소 정도로 여기는 사람의 번호를 지웠다. 내 불행에 '그러게, 이렇게 저렇게 하지'라며 훈수를 두는 사람의 번호를 차단했다. 남들 눈에는 작아 보이지만 긴 세월 고생해서 이루어낸, 내게는 너무나 큰 성과를 축하해 주기보다는 그 성과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각인시키는 사람의 번호와 계정을 차단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던 가시가 가득한 잡풀을 그렇게 다 쳐냈다. 그러자 관계가 간결하게 정돈되었다. 내 소소한 일상에 언제든 진심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만 남았다. 내게 남은, 내가 남긴 최소한의 관계는 참으로 소중하다. 떠올리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든든해지는 사람들이다.
잔잔한 반가움
영어 공부에 한창 몰두하던 때에 나는 옛날 미국 시트콤에 심취했었다. 치어스(Cheers)도 그중의 하나였는데, 제목만 생각해도 두근두근한다. 이 시트콤의 인트로에 경괘하게 울려 퍼지던 노래 때문이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때때로 우리는 모두가 우리의 이름을 알고, 언제든 반겨주는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등장인물이 치어스로 들어서면 모두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어준다. 나는 그곳 치어스의 바텐더가 되고 싶었다.
이곳 촌집에 집수리에 쓰이길 기다리는 물건들로 채워진 방이 하나 있다. 지금은 창고나 다름없는 그 방을 나만의 '치어스'로 만들 계획이다. 그 방이 게스트룸으로 준비를 마치는 날,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위해 비워 둘 작정이다. 연락 없이 불쑥 찾아와도 언제든 잔잔하게 반겨주는 곳으로 만들어 두려고 한다. 손님을 맞으려고 굳이 단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저 문을 활짝 열어주기만 할 작정이다. 언제쯤 시작할지, 언제 끝낼지 모르지만, 그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해진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낯설지만 아는 얼굴이 있어 낯설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을 때, 그저 사람의 곁에 하룻밤 가만히 머물고 싶을 때 불쑥 찾아갈 곳이 간절했던 이전의 나를 위해 언제든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곳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