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식가였다. 아니, 지금도 대식가다. 혹시 이런 말이 있다면 나를 '애식가'라고 부르겠다. 맛있는 건 그날 다 먹어 치워야 식욕을 겨우 달랠 수 있었다. 이제는 먹고 싶은 건 내일 또 먹으려고 남겨둔다.
BitterSweet
달콤한 건 때로 통증을 준다. 설마 음식이 통증을 일으킬까 싶었는데 사실이었다. 십수 년 전에 목디스크 시술을 받다가 중추신경을 다치고 나서 나는 인간이 그렇게 다양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불타는 듯한 통증, 쥐어뜯는 듯한 통증,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통증. 말로 다 묘사하기 불가능한 실체 없는 통증이 수시로 덮쳤다. 의료사고가 분명했지만 증명할 길이 없어 나는 홀로 견뎌야 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정신이 맑았던 적이 없었다. 수면제에 취한 듯, 잠에서 덜 깬 듯 온종일 몽롱했다. 어쩔 수 없이 통증도 몽롱함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 시절 나를 무참히 무너뜨린 것은 극도의 피로감이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피로감이 밀려들 때면 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있어야 했다. 심연 속으로 끌려 내려갔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내 몸이 일으킨 통증에 적응해 가던 고단한 몇 년 흘렀다. 그동안 왔다 갔다 하는 통증 대신 절대로 가시지 않는 전신의 근육통과 관절통, 현기증이 자리 잡았다. 죽음 같은 피로감은 잊을 만하면 찾아왔지만, 다행히 빈도가 차츰 줄었다.
그럭저럭 통증과 동행하며 지내던 7년째 되던 때, 처음처럼 극한의 피로감과 내 몸의 세포가 하나씩 죽어가는 듯한 전신의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그 감각이 가실 때까지 하루에 서너 시간 이불이 다 젖도록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대며 누워 있는 일상이 또 시작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섭식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것이 통증을 유발하거나 악화한다고 말하는 이론을 접하고, 나는 순식간에 설득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설탕과 탄수화물
다 쓰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섭취한 달콤한 설탕과 탄수화물은 결국 부산물 같은 나쁜 지방으로 내 몸 구석구석에 축적되어 살과 통증을 불리고 있었다. 나는 못된 지방을 없애고 내 몸을 건강한 미생물로 채우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먹지 않는 음식이 하나씩 늘어났다. 갈증 날 때 단번에 두 캔씩 들이키던 탄산음료에는 이제 아쉬운 눈길만 한 번 던지고 지나갔다. 그렇게도 자주 먹던 짬뽕 라면의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붉은색은 이제 색을 볼 수 없는 양 외면했다. 쉽지 않았지만 양념치킨과 피자도 끊어냈다. 그 대신 토마토, 가지, 양파, 브로콜리, 시금치, 콩, 두부, 마늘 같은 식재료를 사 와서 직접 조리했다. 나는 대식가 답게 배부르게 먹으면서 살을 빼 보기로 했다. 매일 한 끼는 내 식욕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꽤 푸짐하게 준비했다. 나는 그것을 '채소 듬뿍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불렀다.
달콤한 것의 저항
달콤한 것은 쉽게 나를 떠나 보내지 않았다. 나는 단번에 확 끊기 전략을 취했는데, 그래서 금단의 고통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편두통, 어지러움, 무기력, 팔다리 저림, 오심, 사지 떨림, 식은땀, 눈앞에 떠다니는 양념치킨과 피자의 환영 같은 것들이. 금단의 고통은 거셌어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련은 꽤 길게 남았다. 마트에 갈 때면 자주 사 먹던 것들 앞에서 한참 서성거렸다. 중독은 대개 다른 중독으로 대체되기에 십상인데, 나는 잘 참았다.
소소한 근육과 신기한 섬유질
통증을 일으키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만성 통증을 '섬유근육통'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린 나의 기괴한 통증은 극적으로 완화되었다. 당질을 줄이고 섬유질을 주로 섭취한 덕분이었다. 지구의 중력보다 무거운 힘으로 심연으로 눌러 내리던 전신의 피로감과 비슷한 감각이 가끔 찾아오지만 이제는 약하게 머물다 사라진다. 설탕과 인공 감미료가 배제되고, 탄수화물이 제한된 식사로 십육 킬로의 지방이 사라졌고, 통증도 멀찍이 자취를 감추었다. 내 몸에서 달콤한 것이 통증을 더 일으켰던 게 맞았다. 어느덧 나는 고기나 떡 같은 쫄깃하고 쫀득한 식감이나 과자의 바삭한 식감 대신 채소나 과일의 아삭한 식감에서도 씹는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신선한 재료의 심심한 맛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느낀다.
되도록 자연식 채식주의자
5년이 되었다. 고기, 유제품, 달걀을 먹지 않은 지가. 여전히 가공식품도 거의 먹지 않는다. '거의'라고 한 이유는 내가 아무리 집에서 조리해서 먹어도 공장에서 가공된 간장, 된장, 고추장, 두부는 가끔 사용해서 그렇다. 몹시 가끔 옛 맛을 잊지 못해 컵라면이나 과자를 사 먹기도 하고, 생선과 해산물도 한 번씩 먹는다. 이제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 식사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굳이 내가 어떤 섭식을 하는지 알리거나 정의할 필요는 없지만, 경증의 정리 강박이 있는 나는 내가 어떤 '주의자'인지 가끔 따져본다. 내가 속할 카테고리를 찾지 못해서 하나 새로 만들었다. 나는 '되도록 자연식 채식주의자'이다.
설레는 순간
섭식을 바꾸면서 당질이 나의 몽롱함(Brain fog)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탄수화물 제한 섭식을 해도 거의 모든 식재료에 당질이 포함되어 있기에 무언가 다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나는 공복에 집중했다. 다이어트 정체기를 극복하게 했던 간헐적 단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다이어트 중반의 정체기를 16시간 간헐적 단식으로 극복했었다.
얼마 전부터는 '되도록 19시간 공복'을 실천하고 있다. 오후 4시부터 9시 사이에만 음식을 섭취한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오후 3시부터 설렌다. 신성한 식사 준비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먹는 것을 사랑하는 '애식가'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담한 냉장고 문을 열면 빼곡히 채워진 채소와 과일이 보인다. 냉동실 문을 열면 서울 갈 일이 있을 때면 사 오는 통밀 사워도우가 꽁꽁 얼려져 있다. 오늘의 요리는 마늘이 듬뿍 들어간 가지와 버섯볶음이다. 마늘을 씻어 대충 얇게 썰고, 통통한 가지를 몇 개 꺼내 씻어 손가락 두 개 굵기로 썰고, 느타리버섯 한 팩을 꺼내 씻어 손으로 찢어서 재료를 준비한다. 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듬뿍 두르고 마늘을 쏟아 넣어 노릇노릇 구수한 향이 날 때까지 볶다가 가지와 버섯을 듬뿍 넣고 뚜껑을 닫아둔다. 자글자글 끓는 소리에 군침이 돈다. 숨이 죽으면 소금을 몇 꼬집 집어서 뿌리고 뒤적인다. 그동안 포도송이와 복숭아를 꺼내 또 씻고 빵 몇 조각을 다른 프라이팬에 굽는다.
단순하고 소담한 식탁이 차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