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방이 두 개, 하나는 딸이 쓰는 방, 다른 하나는 부부 침실이다. 딸의 방에는 침대, 책꽂이, 딸의 책상이, 부부 침실에는 옷장과 책장과 침대가 꽉 들어차 있다. 내가 쓸 수 있는 책상은 없다. 집에서 일할 때는 접이식 책상을 펴거나 식탁을 이용한다. 개불편하다.
이전에 살던 집은 방이 세 개였고 부부 침실 뺀 두 개의 방에 내 책상, 남편 책상이 각각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책상에는 딸의 장난감, CD플레이어, 아이 로션, 외출 시 입었던 옷 등을 포함하여 온갖 잡동사니가 항상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내 책상을 쓸 수가 없어서 일할 때는 식탁을 이용했다. 그때도 개불편했다.
점심 먹고 산책 겸 동네를 돌다 여름에 조금 큰집으로 이사할 때 들일 책상과 식탁을 보러 가구점에 들렀다. 이사 갈 집의 부부 침실과 아이방 이외의 나머지 방을 꾸미는 것을 두고 남편과 나 사이에 격론이 펼쳐졌다(방이 3개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책장으로 꾸민 보기 좋은(나의 입장에서 볼 때 보기만 좋다) 서재를 만드는 것이 오래된 소망이니 책상은 근사한 것으로 하나만 두어 공유하자는 남편의 의견과 각자의 책상을 두어야 개인 공간이 확보되니 책상은 두 개여야 한다는 나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래서 생각해낸 나의 대안은 ‘로망이라면 남편님 스타일로 방을 꾸미세요. 저는 거실을 독차지하겠나이다. 대신 남편님이 최애 하는 TV와 소파는 없앨 거고요. 대형 식탁은 최대한 폭이 넓은 것으로 제가 고를 겁니다’이다. TV와 소파를 포기할 수 없는 남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남편은 TV를 없앨 수는 없다, 대형 식탁 가격이 너무 세다 하며 서재에 마주 보는 책상을 놓고 함께 쓰자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책상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남편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하나 남은 방은 당연히 나와 공유할 생각이었고 기왕에 그럴 것이면 평소 꿈꿔왔던 고급스러운 서재로 꾸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스타일로만 방을 꾸미겠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급상승하였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잘못 해석했던 거다.
우리는 거실에 대형 식탁을 놓고 TV는 두되 미닫이 문이 달린 벽장을 짜서 TV를 가리고(볼 때만 열고 보기로) 소파는 없애기로 했으며, 독립공간을 원하는 나를 위해 부부 침실에 작은 책상을 추가로 놓기로 했다. 내 방이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식탁을 책상으로 이용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던 최근 몇 년간의 나의 상황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하였다.
이제 나는 책상 부자이다. 그래서 책상마다 다른 콘셉트로 이용해 볼까 생각 중이다. 어떤 콘셉트로 쓸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