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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23. 2022

카페, 회복의 장소

        

머리가 복잡합니다. 정리가 필요해요. 이런 날에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향긋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어야 합니다. 점심을 거르고 회사 근처에 숨겨둔 나만의 아지트, 카페 로쏘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이가체프와 오렌지 케이크 주세요.”     

“네, 손님. 커피 내리는데 6~7분 걸려요. 감사합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반 정도 열어둔 폴딩도어 쪽 좌석에 앉습니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눈꽃이 핀 겨울나무들 사이로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네요.          


“커피와 케이크 나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양파 문양 커피잔의 테두리를 타고 입안으로 넘어오는 커피 맛이 일품입니다. 커피가 혀에 닿는 순간,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한 회사의 처사 때문에 격분했던 감정이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오렌지 시럽에 담가 상큼함이 배가 된 케이크도 먹어봅니다. ‘역시, 커피와 오렌지는 묘하게 잘 어울린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불합리에 눈감았던 관리자들을 미워하는 감정도 조금 진정되었습니다.           


수첩과 펜을 꺼내어 ‘되돌아보기’를 합니다. 조직의 조치와 그에 대한 나의 반응, 조직 구성원으로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차분하게 적어보는 거죠. 순간순간 분노가 차오르기는 하지만 가능한 한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앞으로의 나의 전략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달그락”          


마지막 커피 모금을 넘기고 커피잔을 커피 받침에 놓습니다. 3페이지 가득하게 적었네요. 이렇게 ‘되돌아보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화를 덜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특별한 카페를 정해두고, 극한 갈등 상황에 처할 때, 복잡한 문제에 맞닥뜨리기 전, 켜켜이 쌓인 일들을 해치우기에 너무 지쳐 있을 때, 나라는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마다 들립니다. 30대에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30대 때 사색의 공간으로 자주 이용했던 카페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습니다. 오래전에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블로그나 카페에 남겨진 사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제가 애용했던 카페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지점의 카페 사진을 보며 옛일을 추억해 보았습니다. 첫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끄적였던 일기, 그때도 지금도 다 읽지 못한 니체의 책, 연애 시절 남편과 함께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 등이 조각조각 생각납니다.           


정리와 회복을 위해 이용하는 카페는 조금은 평소 다니는 카페와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감정과 내면에 충분한 위로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조금은 사치스러운 곳으로 정합니다. 먼저 커피의 품질로 사치스러움의 수준을 정하고, 예쁜 잔에 커피를 내어주는 곳이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예쁜 잔이란 꽃이나 식물, 기하학적 문양을 넣은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잔을 말합니다. 곁들여 먹을 케이크나 쿠키는 바로바로 만들어 내어 신선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회복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좌석 간 거리도 좀 있어야 하고요. 꽤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제가 사는 근처에 꼭 두어 곳 정도는 정해두죠.

          

지금 사는 곳 주변에도 사색과 회복의 공간으로 사용할 만한 사치스러운 카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밥벌이, 아이 교육, 가정 꾸리기 등으로 늘 타임 푸어의 삶을 이어가는 지금이 30대 때보다 더 절실하게 회복과 사색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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