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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pr 07. 2022

상춘 소감

산책길에 산수유 꽃을 보며 든 생각

살을 빼야지. 달리기를 해야지. 밥을 적게 먹어야지. 군것질을 하지 말아야지.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야지. 일기를 써야지. 적어도 한 달에 책 두 권은 읽어야지. 매주 월요일마다 글을 써야지. 매일 30분씩 영어회화 공부를 해야지. 주말에는 가계부를 써야지. 영상편집 방법을 배워야지. 운전을 다시 해야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초에 정리한 일들이다. 적어놓고 보니 꽤 많다. 실천력을 보장하기 위해 매일 할 것과 간격을 두고 할 것, 주중에 할 것과 주말에 할 것을 구분하고 나름 일정표도 짜두었다. 하지만 3월이 다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달에 책 두 권 읽기, 월요일 글쓰기 정도뿐, 나머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못한 일들을 보며 늘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실천을 잘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런 것들을 다 지키면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게 무엇이 남는지가 궁금해졌다. 월급이 오르거나 승진을 하나?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나? 내가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나?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겠다고, 무엇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려 했지?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목표를 설정해 두지 않았으니 이유가 생각날 리가 없다.


점심 산책길에 볕이 잘 드는 어느 가정집 대문 앞에 수줍게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을 보았다. 꽃 피우기를 위해 온 몸을 던져 정진(精進)하는 산수유나무를 보면서 목적 없이 할 일만 끝없이 나열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산수유나무는 이 계절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나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으리라. 꽃을 피워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옆자리의 다른 꽃들을 쳐다보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꽃을 피우는 데만 집중하였으리라. 그리하였기에 이렇게 고운 꽃을 마음껏 자랑하게 된 것이리라. 그에 비해 목적을 정하지 못한 나는, 달리기, 영어공부, 일찍 일어나기 같은 과제를 실천할 동력을 얻지 못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삶의 목표도 없이 살아왔냐’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부끄럽지만 그렇다, 나는 목적이 없이 살아왔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봄볕에 피어난 산수유꽃을 보면서 의미 없이 해야 할 일을 빼곡하게 적고 실천 여부를 체크하는 것보다 나의 삶의 목표를 먼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튼실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보다 ‘왜’, ‘무엇 때문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길가에 핀 꽃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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