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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pr 15. 2022

울타리를 넘어 자유롭게

딸이 일요일에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가겠다고 한다. 매일 카톡 하고 전화하는 죽고 못 사는 친구 4명과 초등학교 졸업 전에 인생 사진을 찍으러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약속 장소는 집에서 한참 먼 신림동, 데려주겠다고 했더니 딸은 혼자도 갈 수 있다고 조그맣게 내뱉었는데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위험해서 아직은 안된다고 하는 나의 말에 조용해졌다.


다른 일정 때문에 늦게 모임에 합류하기로 하고 약속 장소 근처에서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니 아이들은 모 족발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고 했다. ‘어라. 초등학생 여자애들끼리 술 먹는 아저씨들이 득실거리는 족발집에 가 있다고?’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애들만 왔다고 혹시 음식을 대충 내주지 않을까? 여자애들이라고 기분 나쁜 농담을 하지나 않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족발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족발집 근처에 오니 딸은 이제 엄마는 가라며 손을 흔든다. 아니다, 엄마가 너희들 밥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 엄마가 끼면 무슨 재미냐며 펄쩍 뛰는 딸에게 어린 여자애들끼리 식당에 있으면 혹시라도 나쁜 어른들이 치근덕대거나 밥값을 속일 수도 있으니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못마땅한 표정을 한 딸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족발집에는 딸의 친구들만 있었고, 사장님은 내게 ‘어머님도 같이 드실 거죠?’라며 앞접시를 내어주는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였다. 술 먹는 사람이 없고 사장님이 나빠보이지 않아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정신없이 족발을 뜯는 아이들에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친구 중에 이 동네를 잘 아는 아이가 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하면서 식당과 놀 장소는 핸드폰으로 찾았다고 했다. '어쭈, 그런 걸 다해?'라고 말하려다가, 나도 맛집과 놀거리를 그렇게 찾곤 하는데, Born to be IT인 애들이 이런 것을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게 우스워져서 그냥 허허거리고 말았다.


종일 아이들이 길을 잃지는 않을지 안전한 곳에서 노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런지 그날 저녁은 유난히 피곤했다. 소파에 널브러져 친구에게 오늘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무지 피곤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크크 웃으며, "그냥 조금 내버려 둬도 돼. 애들 생각보다 잘해.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에너지와 방식으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하고 싶어 하는데, 엄마가 자꾸 끼어들면 꼰대 소리 듣는다."라고 했다.


그러게 말이다. 아이들은 또래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맛보고 있었는데 왜 그리 걱정을 했을까?


걱정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시작되었다내가 딸 또래일 때, 친구들과 사 먹는 음식은 문구점에서 파는 사탕이나 조각 엿, 아니면 길가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였다.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은 것은 중학교나 되어서였고 그것도 분식집에 한정되었다. 용돈이 적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감히 어른들의 음식을 사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기 전에 친구들끼리 어른들이 가는 식당에 갔던 첫 기억은 고3 여름방학 때 독서실 친구가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사이에 끼어 어색하게 냉면을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런 시절을 보낸 나에게 무려(나는 족발이라고 하면 자꾸 술 생각나서 이런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족발집에서 어른 없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험치에 비추어 보면 딸과 친구들의 행동은 말 그대로 상상초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놀랐을까? 원인은 내가 딸을 나이보다 어리게 보고 있는 데 있었다. 얼마든지 혼자 밥도 사 먹고 지하철을 타고 멀리까지 친구를 만나러 갈 나이가 되었는데, 나는 딸을 여전히 데리고 다니고 챙겨줘야 하는 초등 1학년처럼 대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마다 '아직은 위험하니 안돼, '그건 어른이 되어서나 해야지'라며 아이의 행동 범위를 좁혔고, 이번에 그 행동 범위를 넘어서자 나는 '어디 감히, 이런 당돌하게' 라며 아이들의 탐험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아이들의 행동 범위도 달라질 수 있는데 몇십 년 전의 기준을 딸에게 들이밀었던 것이다. 아이들 눈에 비친 나는 정말 꼰대였을 것 같다.


친구는 "부모가 울타리를 크게 쳐주면 아이는 분명히 좀 더 독립적으로 자랄 거야"라고 조언한다. 나같이 겁나 겁 많은 엄마가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지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내 아이가 진취적이고 모험을 즐길 줄 알며, 무엇보다 독립적으로 사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딸에게는 호기심이 들면 무엇이든 다 해보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딸이 도전적으로 행동하자 나는 딸의 앞을 막아섰다. 말로만 모험을 즐기라 했지 실제로는 내가 정한 선을 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 이 겁 많은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위하 울타리를 얼마나 넓게 쳐줄까를 고민하고 딸이 그 울타리를 넘어가려 할 때 발목을 잡지 않을 거다. 부모가 생각하는 울타리의 넓이와 아이가 원하는 울타리의 넓이가 다를 때, 넓은 울타리가 거추장스러워서 울타리를 밟고 날아오르려 할 때, 위험하다거나 네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붙들지 않을 거다. 아니, 오히려 울타리를 넘으려 할 때 발 받침대 하나를 쓰윽 밀어 넣어줄 것이다. 아이의 방식과 에너지로 세상을 마음껏 탐색하도록 놓아주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일 아니겠는가. 쉽지는 않겠지만 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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