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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pr 29. 2022

로비스트 놀이

나만의 잠 깨는 방법

업무 중에 쏟아지는 잠은 생각보다 쫓아내기 힘들다. 커피 마시기, 간식 먹기, 수다 떨기 등이 복합되어야 겨우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오늘도 오전에 그랬다.  

   

10시 반이나 되었나? 졸음이 무지하게 쏟아졌다. 어제, 아이가 두 시간마다 나를 깨우는 통에 잠을 잔 것인지. 깨어있는 중에 잠시 눈을 붙인 것인지 모르게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인가 오전 내내 잠에 취해 있었다.  

   

빨리 잠을 깨고픈 마음에 커피를 마시러 자리를 떴다. 커피메이커에서 드르르륵하며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원두의 향이 잠을 쫓아내는 것 같다. 나는 원래 커피는 따뜻하게 먹지만, 오늘처럼 정말 졸릴 때는 얼음을 잔 가득히 채워 최대한 시원하게 마신다. 커피 향도 음미했고 얼음 알갱이로 머리도 식혔으니 이제 안 졸릴 것이다라는 기대를 안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커피의 효과는 20분도 채 안되었다. 마신 커피가 위장에 모이면서 포만감을 극대화시켰는지, 배가 불러 다시 졸음이 쏟아진다. 뭐라도 씹으면 잠이 달아날 것 같아 서랍을 뒤졌다. 과자나 사탕이나 초콜릿 없나? 며칠 전에 사놓은 과자 한 봉지가 나왔다. 봉지를 얼른 뜯어 한 조각, 두 조각 과자를 입에 밀어 넣었다. 과자를 씹는 동안은 정신이 말짱하지만 단 과자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다시 졸리다. 그렇지 또 내가 위장을 채웠구나. 조금 전에 커피를 마셔 배가 불렀는데 과자를 먹고 배를 더 부르게 하다니. 안 되겠다. 껌을 씹자.     


자일리톨 껌 두 개를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질겅질겅 씹었다. 단물이 쪽쪽 잘도 나왔다. 10여분 씹어 단물이 다 빠지자 혓바닥으로 껌을 얇게 밀고 입술을 오므려 바람을 살짝 넣어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풍선껌이 아닌지라 풍선은 커지지도 않고 툭툭 짧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내 터졌다. 이제는 껌을 씹어 잠을 쫓는 것이 아니라 풍선을 부는데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목적은 잠을 깨는 것인데 앗, 이런 뭐 하는 거지? 정신 차리고 껌을 뱉었다.     


다시 서랍을 뒤졌지만 먹을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제 잠을 깨는 마지막 수단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번 더 복도로 나갔다. 복도 왼쪽 끝에 있는 내 자리에서 반대편 오른쪽 복도 끝까지 설렁설렁 걸어갔다. 다른 이들의 일에 방해되지 않게 최대한 사뿐사뿐 걸었다. 목적지는 오른쪽 끝자락에 자리한 옆팀의 막내 직원과 우리 팀 동료. 두 사람의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쓸데없는 잡담을 조금 했다. 내가 반갑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저 사람 또 졸린가 보네, 하며 받아주었다. 두 사람과의 대화가 끝나면 또 내 자리로 어슬렁어슬렁 돌아왔다. 이제 잠이 좀 깬듯했다.     


아니었다. 여전히 졸렸다. 계속 같은 줄만 읽고 있었다. 내 컴퓨터 화면에   ㅅㅅㅅㅅㅅㅅ  열다섯  찍히고 있었다.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고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머그잔을 들고 오른쪽 끝의 정수기로 갔다. 물론 왼쪽 끝 내 자리 옆에도 정수기가 있지만 복도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야 잠이 좀 깨니 말이다. 물을 받아와서 비타민 C를 삼켰다. 일부러 신맛을 느끼려 조금씩 녹여먹었다. 오른쪽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참, 나는 신 것 잘 못 먹지.     


이렇게 해도 머리가 무겁다. 기지개를 쭉 켜고 다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이번에는 A4용지가 얼마나 있는지, 복사기는 잘 돌아가는지, 팩스는 잘 켜졌는지, 토너는 충분한지 등을 살피며 괜히 집기들을 점검했다. 자리로 돌아가면 또 졸릴 것이니 잠을 아예 깨고 돌아가자고 마음먹고 필기구함도 들여다봤고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조간신문들도 정리했다.     


이때,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 나와 가장 친한 동료가 한마디 한다.


'승! 또 로비스트 놀이하냐? 오늘은 아침부터 로비스트네. 이리 와 봐, 콤부차 마시고 정신 차리시오. 얼음 가득하게 한잔 타 줄게"     

"쌩유, 민! 나 언제쯤 로비스트 안 하게 될까?"     

"집에서 푹 자면 되지."     

"그렇겠네 정말, 오늘은  어제 못 잔 것까지 합쳐서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로비스트 안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나처럼 참을 수 없이 졸리거나 잠시 생각정리를 하고 싶을 때 멍하게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로비스트라고 부릅니다. 우스갯소리로 누군가가 붙인 말인데 들으면 들을수록 찰떡입니다. 어떤 이는 로비스트라고 불리는 게 일 안 하고 노는 처럼 보일 수 있다고  피하고 싶어 합니다만 저는 별로 개의치 않아요. 참을 수 없이 졸려서 자리에 앉아있는 게 의미가 없을 때, 아이디어가 얽혀서 도무지 풀리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이든 아예 다른 생각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주어  있는 쉬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노는 것 같아 보여도 이 방법이 능률을 올리는데 더 효과가 있더라고요. 잘 쉬고 잘 놀아야 일도 잘한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었어요.


여러분은 회사에서 참을 수 없이 졸음이 밀려올 때 어떻게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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