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가치를 추구하는 ISFP Lucy와 나누는 인터뷰 [7-1회]
'서른을 마주한 우리'의 일곱 번째 인터뷰이는 Lucy이다. Lucy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함께 나눈 시간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Lucy와는 알게된지 얼마되지 않아 무척 빠르게 친해졌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를 대하는 온도가 비슷해서일까? 혹은 상대가 내 말의 의도와 맥락을 잘 파악해서일까. 대화를 하는 것 자체에 부담이 전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지인이다.
Lucy에 대해 소개하자면 비건, No Buy Wear Year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프리 등 가치를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활동들을 주변에 소개하기도 하면서 추구하는 가치들을 즐겁게 소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거나 관심사가 비슷한 주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해서 내 삶에 풍성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Lucy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화로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그와 같이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모아 대화의 장을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Lucy를 인터뷰에 초대하게 되었다.
"오늘은 비건, No Buy Wear Year 등 가치를 실천하는 멋있는 Lucy를 모셔봤습니다. 안녕하세요, Lucy님. 이름, 나이, MBTI로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한 번 부탁해도 될까요?"
"네, 이름은 Lucy구요. 나이는 30살, MBTI는 ISFP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초대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일단 이런 기획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고 좀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혼자서 생각하기에 어려운 질문들을 열심님과 인터뷰에 참여하셨던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고민해보고 저도 한 번 제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에 대해서 한 번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대해주신 것에 일단 너무 감사했어요. 너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 합니다."
"와, 정말요? 오늘 나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해주는 Lucy의 말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고 또 한 편으로는 가치를 전하기 위해서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런 생활도 있구나, 저런 가치도 있구나
이런 것들을 전시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Q. 요즘 Lucy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Lucy : 관심사를 비교적 넓게 가져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지금 이 시점이라고 한다면, '나'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것 같아요. 30년을 살아오면서 저의 취향이나 제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물론 가치는 바뀌기도 하는 것이지만,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심적으로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이런 게 되게 흔들리는 것 같거든요. 그래도 나는 내가 제법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정말 나에게 위기가 왔을 때 생각보다 제가 저를 모르는 거에요. 아, 나 진짜 나랑 더 친해져야 되겠구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일단은 나부터 먼저 돌봐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요새는 진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열심 : 너무 공감이 돼요. 어제 친구랑 같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친구가 접촉사고가 한 번 났었는데요. 자신이 평상 시에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도 사고가 나는 순간 어떻게 해야할지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닥친 위기들이 교통사고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갑작스럽게 딱 왔기 때문에, 오히려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되게 공감이 되고 앞으로도 스스로에 대해 친해지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아요.
Q. Lucy님을 생각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책이랑 글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아요. 저희가 책과 글에 관심이 많다보니까 그것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Lucy님이 맨 처음에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나 배경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Lucy : 아주 오래 전이어서 딱 이거다라고 찝지는 못하겠지만 집에 책이 많은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을 접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은 셜록 홈즈거든요? 그때가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읽다보니까 그게 너무 재미있는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전집을 사달라고 졸랐었거든요. 당시에 전집은 안사주셨는데, 도서관에서 어찌어찌해서 다 빌려서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추리소설을 엄청 좋아하게 됐고 그 관심사가 고등학생 때까지 쭉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글 쓰는 것'.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릴 때는 쓰는 것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초등학생때나 중학생때나 백일장 같은 거를 학교에서 나가게 시키잖아요. 그림과 글을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저는 보통 글을 썼던 것 같고 글을 씀으로 인해서 제가 받았던 긍정 경험들이나, 성취감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히 상을 받기도 하면서, 물론 그건 어린 시절이니까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긍정 경험이 조금씩 쌓여왔고 이야기라는 것 자체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거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 써보고 싶다.' 그걸 할 수 있는 수단이 저에게는 글이었던 것 같고요.
학업적인 면에 있어서도 국어나 언어 영역에 있어서 성취가 훨씬 좋고, 편하고, 재미있고, 잘 나오고,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선생님들도 대부분 국어선생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관심사가 쭉 이어져 오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씩 조금씩 쫌쫌따리? 한 방에 팍 왔던 그런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작은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온 것 같아요.
열심 : 저도 너무 공감이 되는 게 어릴 때 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저도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 그리기로 상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근데 진짜 잘 그리지 못하는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그 상을 받았다는 것이 나에게 '아,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을 주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거든요. 물론 현재까지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저에게 영향을 충분히 미쳤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Q. 책이 Lucy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Lucy : 이것은 제가 되게 오랫동안 고민을 했던 것인데요. 제가 되게 존경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과 독서모임을 했었어요. 선생님이 주도를 하셔서 학생들이랑 같이 했었는데.
저는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왜 읽는가에 대한 답을 좀 피상적으로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을 보여준다던가, 내가 체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거나, 다양한 세상의 인간 군상들을 접할 수 있다거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냥 딱 '재미있으니까'라고 말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근데 그게 와닿았었거든요. '그렇지, 독서도 오락이고 엔터테인먼트지.' 물론 우리가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통해서 여러 가지들을 얻을 수 있고 독서를 하는 목적도 다양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짜 와닿았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느꼈던 건데요. 아마 아시겠지만,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구절이나 문장이 있으면 포스트잇을 진짜 많이 붙이거든요? 그래서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이 굉장히 많이 붙어있는 책들이 있어요. 근데 그런 책들, 물론 테마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렇게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이유는 그 문장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던 것인데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에요. '어? 이거 완전 내가 하고싶었던 말 인데?' 그것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나 그런 것들이 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아름다움을 계속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글에서의 아름다움이 저에게는 그런 것 같아요. 언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 미학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문장들 혹은 멋있다고 생각하는 문장들 그런 표현들을 되게 수집하고 싶어지더라구요. 나한테 딱 맞는, 핏한, 혹은 내가 정말 아름다고 느끼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도 독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 : 공감이 되는게 저희가 일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표현을 진짜 많이 쓰잖아요. 그런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말을 글로, 문장으로 표현해냈을 때의 감동이 진짜 클 거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Lucy : 맞아요, 진짜 희열이 느껴져요. 딱 그런 문장을 찾으면 '바로 이거야!' 이런 느낌?
열심 : 맞아요. 책이 나에게 어떤 존재냐라고 물었을 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거잖아요.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Q.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 좀 여쭤보고 싶어요.
Lucy : 이거는 정말 말씀드리기 어려운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시기시기마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달랐고, 그리고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너의 인생책이 뭐야?' 라고 물어보면 저는 아직 못찾았다고 얘기하고 싶거든요.
좋은 책은 너무 많았지만, 인생책은 어딘가에 더 있을 것 같은거에요.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한 책이 많다보니. 그런데 제가 학창시절에 친구들에게 추천을 되게 많이 했던 책이 있어요. 그게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밤의 피크닉'이라는 소설이거든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작가에요. 일상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인데, 밤의 피크닉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거든요. 꽤 오래 전 작품이긴 해요.
이걸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거든요. 그때도 진로나 제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어요. 그때 그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게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 말라는 뉘앙스의 문장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그시절의 저에게는 정말 와닿았었고 제가 생각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스토리 자체가 밤산책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친구관계의 에피소드, 숨겨졌던 인물의 배경들을 잘 다루고 있어서,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열심 : 책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공부때문에라도 책을 많이 접하다보니까 책이라는 존재가 주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안에 있는 게 진리가 아님에도, 우리가 배우는 것의 정답이 다 책에 있다 보니까 책이 되게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책이 나에게 '미래를 위해서 너의 현재를 희생하지마.'라고 말해주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든든한 우군이 되어줬을 말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위로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한 번 읽어보도록 할게요.
Lucy : 네네, 재미있어요.
Q.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좀 여쭤보고 싶어요, 진짜 잘 쓰실 것 같거든요.
Lucy : 창작에 대한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에요. 사실 어린 시절 꿈은 작가였어요, 작가였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오면서 창작이 점점 힘들어지더라구요. 제 상상력의 한계 때문인지, 책을 좋아해서 읽는 것과 창작은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게 반드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아니더라도 요즘은 에세이라는 장르의 시장도 커졌고, 누구나 쉽게 에세이스트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이 되어있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요.
책을 쓰려면 뭔가 핵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것에 대해 정말 이거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라고 할만한게 저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나에 대한 탐구가 저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기회가 된다면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근데 당장의 계획은 없습니다.
열심 : 제가 100권 살게요. 내세요 ㅎㅎㅎㅎ.
Q. 평상 시에 대화를 나누다가, Lucy님이 저에게 '나쁜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정희진 지음)'라는 책을 추천을 해주셨는데요.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진짜 폭력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폭력, 상황에 의한 폭력, 강요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이런 언어적 폭력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줄 수 있는 한 마디가 있을까요?
Lucy :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게는 가해를 했을 수도 있고, 저도 피해자일 순간이 있었을 텐데 이게 사라지지 않잖아요. 저는 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흉터처럼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걸 잊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상처들이 계속 쌓이고 쌓이다보면 굳은 살이 되잖아요.
결국에는 이거를 내가 상처준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 않으면 나 혼자서 견뎌야되는 일이 되는 거에요. 근데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굉장히 어려운 환경인 경우가 저는 훨씬 많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어렵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라는 소설이 있어요. 천선란 작가님 소설인데요. '거기에서 너를 비난하려고 작정한 사람은 너에게 못하는 말이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이든.' 이라는 내용이 나와요. 그것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니까 마음이 다칠 수 있지만, 최대한 빨리 털고 회복을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거기에 너무 오래 잠식되어 있다보면 자꾸자꾸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의식적으로 좀 그걸 안하려고 노력을 해야되는 것 같아요. 생각이 나려고 하면 빨리 사고의 전환을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나한테 상처를 주는 그 사람과 일종의 거리감을 두어서, 심리적 거리감이든 물리적 거리감이든, 그런 걸 두어서 내가 그런 환경에 노출되지 않게끔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요.
사실 그것 조차도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 상황에 놓이게 하지 않는 게 답인 것 같은데, 정말 어렵다면 내가 의식해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그 사람에게 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 김하나 작가님이라는 카피라이터 분이 계신데요. 말하기를 말하기라는 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김하나 작가님도 광고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셨거든요. 당연히 무례한 언행을 겪어보셨고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셨대요. '내가 이것을 참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사람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외로 잘 수용을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 내가 상처 받았고,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시켜주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라는 내용을 보면서, 내가 이야기를 해주는 방법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열심 : 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Lucy : 네. 그래서 어렵겠지만 저도 시도를 좀 해보려고 하거든요? 저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면 저 상처받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뮬레이션을 정말 많이 돌리고 있어요. 언젠가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열심 : 저도 생각에 결론을 내리는 스타일이다보니까 그런 행동을 하면 '아 대화를 안해야지.' 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상태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나의 상처를 인지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상처는 내가 고민할 게 아니라 상대가 고민해야 될 것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힘들다라는 걸 표현했을 때 그 사람의 대처가 적절하지 못하다면, 진짜 그 사람의 잘못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Q. 다음으로 '가치'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칠 때, Lucy님은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던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거나 혹은 비건카페를 찾아 다니는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분 중 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혹시 지금 실천하고 있는 가치들의 종류나 다양성에 대해 소개를 해주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Lucy : 먼저 말씀해주신 것에 기반을 해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일단 환경적인 부분에서 저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를 회복하고 나를 돌보고 그런 안락함을 느끼며 살고 있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환경, 지구라는 행성도 넓게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자원은 유한하잖아요? 무한하지 않은데, 언젠가는 고갈이 될 것이고. 이미 지금도 고갈됨으로써 생겨나는 여러 문제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런게 결국에는 나한테 돌아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는 이런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진짜 뾰족하게 범위를 좁혀서 당장 나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해보면 필요성이 훨씬 와닿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면에서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실천하려고 해요. 저도 자주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비건 같은 경우에도 예전부터 동물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저를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 이들이 만약에 말을 할 수 있었으면, 표현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과 동일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면 우리가 이들을 막 대하고, 정말 나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학대를 하고, 아무렇게나 유기를 하고,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100% 비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나랑 다를 바 없는 생물이다는 생각이 저는 많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아이라거나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동물도 보호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동물권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말하고 보니 결국 다 저를 위한 것이네요.
열심 : '나를 위한 것이다'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실천을 할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Q. 가치를 맨 처음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한 걸로 들리긴 하거든요. 특별한 맥락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Lucy : 그렇게 접하고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최재천 교수님이 교보문고에서 라이브방송을 하신 적이 있어요. 거기에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었는데.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구요. 사대강 이야기를 하면서, 정확한 맥락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를테면 간척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이 강에 나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는데, 이들을 망치고 죽이고 독이 되게끔 하는 행위를 어떻게 내가 감히 찬성할 수 있겠느냐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이게 너무 와닿았고. 내가 알기 때문에,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네.
열심 : 진짜 말 그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보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한다, 이해한다 이런 관점이잖아요. 되게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저도 최재천 교수님 영상 자주 보거든요. 생물다양성 재단도 운영하고 있으시잖아요.
그분의 유튜브 채널이 생기게 되면서 다양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넓게 설파하는 선한 영향력이 생긴거잖아요. 그런 게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해야할까요? 그걸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채널이 생기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Q. 가치를 실천했을 때, 본인 스스로 변화된 점이 있거나, 혹은 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는 점이 있는지?
Lucy : 그런 건 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행동을 함으로써 내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말로써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럼 내가 일종의 모델, 샘플이 되는 거죠. 저를 보면서 저런 생활도 있구나, 저런 가치도 있구나 이런 것들을 좀 전시(display)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함으로서 누군가는 나를 보는 누군가 한 사람은, 열심님도 그렇고, 누군가는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영역이 있구나라는 걸 인지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열심 : 전시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시는 거잖아요. 저는 너무 공감이 되는 게, 우리가 예전에 육식전시에 대한 표현도 얘기를 했었잖아요.
육식하는 것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다던가 사진으로 찍어서 공유하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육식을 많은 사람이 하게끔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그런 걸 잘 안하고 있긴 하거든요. 반대로 비건같은 경우는 친구들과 만날 때 비건카페를 가자고 얘기를 하곤 해요. Lucy님의 행동이 저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쳤기 때문에 가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사건이 있나요?
Lucy :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 최근에는 없어요, 솔직히. 저희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행복한 것 같네요.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들을 하면서 그런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원래 저는 작은작은 것들에서 감동을 잘 느끼는 편이고 소확행이라고 하죠. 그런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려고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오늘도 촬영을 하러 오는데 날씨가 엄청 좋았잖아요. 하늘도 엄청 파랗고, 바람이 불고. 그런 것들도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인 것 같은데 막상 행복했던 일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없었던 것 같네요. 제가 고민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열심 : 요즘 고민이 한참 많은 시기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고양이를 보거나,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것들을 조금 더 생각하면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우리가 30대가 됐는데,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나 고민이 있다면 나눠줄 수 있나요?
Lucy : 일단 30대가 됐다고 해서 사실 큰 감흥은 별로 없었어요. 앞자리가 바뀐다고 해서 전혀... 네, 아직 그냥 어리다고 생각해요. 다만 건강이 아주 걱정이 많이되는데, 한 살 한 살 시간이 지나갈수록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점점 제 몸이 예전에 비해 같은 강도로 물리적인 에너지를 가해졌을 때 못버티는구나를 알게 되서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운동을 좀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어요.
하여간 나이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저는 없는데 다만 그런 건 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부담감과 생각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게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건 현실을 고려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분명히 생각하고 제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특별히 의식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열심 : 사실 이제 요즘에는 서른보다는 서른 다섯이나 마흔 정도가 결혼 적령기이거나 자리를 잡아가는 데 조금 더 익숙한 나이이고 예전과는 세대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평균 수명도 많이 늘어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변화나 압박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전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른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이제 서른인데. 우리 결혼도 해야하고 혹은 집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것에 대한 부담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거에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까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보다는, 방금 얘기한 것처럼 사회가 주는 압력이라던가, 결혼을 고려했을 때의 그 나이가 주는 부담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것들이 가장 큰 요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서른에 대한 부담이 크게 없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는 얘기인 것 같아요.
Lucy : 네, 아직 어립니다.
열심 : 어립니다 ㅎㅎㅎㅎ 그러면 첫 번째 코너는 이렇게 마무리 하는 것으로 하고, 두 번째 코너로 이어가보도록 할게요.
긴 호흡으로 첫 번째 코너가 끝이 났다. 예상보다 길어진 인터뷰에 지칠만도 했지만 늘 하던 대화여서인지 혹은 둘 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여서인지 다행히 둘 다 지친 기색이 없었다. 책과 가치라는 두 가지 주제를 가져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Lucy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긍정 경험과 성취감 덕분에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독서를 오락으로,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그를 보며 나에게도 비슷한 가치를 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행복을 주는 취미나 활동이 더 많이 생긴다면 삶에 에너지를 주는 주요 공급원이 되어 행복이 더욱 다양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편으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Lucy의 맥락이 너무나 와닿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도 크게 보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고 그런 환경이 현재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껴서 써야 할 필요를 느낀다는 말이 깊이 이해됐다. 나도 그를 통해 친환경, 미니멀의 가치를 실천하게 되었기에 '알기에 실천할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이 공감됐다. 나도 내가 가치를 두는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었던 인터뷰였지만 아직 Lucy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많이 남아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쉬는 시간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과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점이 너무나 좋았고 또 즐거웠다. 다음엔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줄지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 일곱번째 인터뷰는 두 회차로 나누어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