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은 지 한 달이 지났다. 3월 2일부터 4월 8일까지 커피를 끊었다. 중간에 한 번, 믹스커피가 당겨서 반 잔 정도를 마신 것 빼고는 그다지 커피가 생각난 적도 없다.
그동안 내게 일어난 큰 변화는 두 가지다.
첫째, 피부가 좋아졌다.
나는 원래 피부 트러블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커피를 끊고 나서 세수할 때 피부를 만져보면 보들함이 남다르다. 그렇다고 탄력이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탄력은 아니고 부드러워진 피부 정도가 알맞은 표현이다.
이러한 피부 변화에는 물을 많이 마시게 된 게 클 거다. 커피를 끊고, 물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커피는 끊었어도카페는 종종 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티를 주문한다. 가끔 집에 있는 개당 300원짜리 티와 같은 티백을 4000원에 파는 카페를 가게 되면 돈이 아까워질 때도 있지만, 카페를 이용하는 이용료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소에 마시는 물의 양이 많아졌고, 피부는 더 부드러워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물을 많이 마신 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커피를 마실 때는 그다지 물이 당기지 않았다. 그러니 이건 커피를 끊은 덕이다.
둘째, 잠을 잘 잔다.
원래의 나는 밤이 오면 죽을 것처럼 끝까지 버텼다가 늦게 자는 버릇이 있었다. 잠이 와도 그 순간을 잘 버텨냈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끝까지 버텼다가 잠을 자곤 했다. 이러다 보니 피로는 누적되고, 다크서클은 턱 밑까지 내려오는 일들이 많았다. 커피를 끊고도 이와 같은 버릇은 이어졌다. 죽을 것 같은 피로가 덮쳐도 끝까지 버티려는 버릇 말이다. 그런데 이제 버텨지지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피로가 덮치면, 그냥 죽은 듯 잠들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불을 켜고 잠든 적도 있다. 나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는 자만심이 피로 앞에 항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커피를 끊은 지 약 1달 하고 5일이 지나던 지난 4월 8일.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당겼다기보다는 베트남 커피를 권하는 지인 앞에서 물리칠 수가 없었다. 내가 커피를 엄청 좋아한다는 걸 아는 지인이 나를 위해 베트남 커피라는 걸 사줬다. 게다가 지인은 나보다 어른이라 커피를 끊었으니 그건 못 마신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실은 그런 말을 꺼낼 만큼 완강한 마음은 아니었다. 커피를 끊었다고는 했지만, 부득이하게 마셔야 하거나 커피가 생각나는 날에는 그냥 먹겠다는 게 나의 결심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커피가 더 생각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절대 안 돼 보다는 언제라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다이어트에서 음식을 조절할 때 더 유리한 것처럼.
저녁 7시쯤 진하디 진한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목 넘김이 꽤나 부드러웠다. 뭔가 묵직한 연유맛도 느껴졌다. 살이 꽤 찔 것 같은 맛이었고, 엄청난 양의 카페인이 포함됐음을 직감할 수 있는 맛이었다. 마셨을 당시에는 잘 모르겠던 그 느낌들이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온몸을 휘감았다. 이건 마치 약간의 환각 같은 거랄까. 하루 종일 일이 많았기에 몸이 피곤했지만, 카페인의 영향으로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분명 정신적으로는 잠들었는데, 눈은 떠 있는 몽환적인 상황이 지속됐다.
그리고 아침. 속이 메슥거려서 아침을 늦게서야 먹었다. 멀미 증상 같은 메슥거림이었다. 그렇게 오후쯤 되자 몸은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마치 술을 마신 다음 날 같은 기분이랄까.
이제 몸은 카페인이 주입되지 않는 나의 생활에 거의 적응한 듯하다. 가끔 마시는 술기운이 몸을 늘어지게 하는 것처럼 이번의 커피는 그런 현상과 같았다.
커피를 끊은 것에 만족하냐고 물으면, 나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나고 그리워지면 옛 연인의 SNS를 흘깃 보는 것처럼, 커피가 생각나면 한 모금 정도는 마실 것이다. 완벽한 단절이라기보다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다. 몸이 많이 아팠고, 커피를 끊으며 겪었던 금단현상이 꽤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20대를 채워주고, 카페 사장이라는 멋진 꿈도 꾸게 해 준 커피지만 이제는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