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자체는 꽤 넓지만, 골목 양쪽에 주차된 차들로 인해 반대편에서 차가 나올 경우 두 대의 차가 동시에 지나가기에는 비좁은 도로였다.
서둘러 골목을 지나가던 중, 반대편에서 SUV 차량이 한 대 나왔다. 결국 우려하던 끼임 사태가 발생했다. 천천히 차를 빼기 위해 잠시 멈춘 상황에서 SUV 운전자가 창문을 내렸다.
“빨리 빼요!”
“저도 노력하는데 어렵네요. 그쪽에서 조금 더 빼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쪽이 빼야지!”
“잘 들리니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운전을 못하면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야지, 밖으로 돌아다녀! 못하면 그냥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피해를 주고 다니냐고!”
말로 뺨을 맞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드라마에서 보던 대사를 실제로 듣고 있자니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나 역시 상대방 운전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목청 대결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다. 하지만, 운전자 너머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아이가 보였다.
아이를 보며 큰 목소리는 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차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저항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자신의 옳음을 증명했다고 느꼈는지, 여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가 운전 못하면, 밖으로 나다니지 말아야지!”
여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드라마 속의 대사들. 더는 참을 수 없어,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음성 녹음을 켰다. 그리고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지금부터는 녹음하겠습니다. 저도 더는 못 참겠어요. 그만하세요!”
이후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에게 차에서 내려 앞공간을 보라고 하고는 남은 공간을 따라 차를 뺐다. 나 역시 나의 공간을 살피며 골목길을 지나갔다.
차를 집에 주차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같이 소리를 질러줄 걸 그랬나?’ 싶다가 이내 든 생각은 ‘반사’였다. 내가 받지 않은 그녀의 감정쓰레기들. 그 쓰레기 같은 감정과 말들이 내게 오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면…
그녀는 그 말들을 자신의 딸에게도 할 수 있었을까. ‘못하면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야지.’ 그 말은 나와 동시에 그 딸이 듣고 있던 말이었다.
운전 연습을 조금 더 해야 한다는 건 인정. 아직 상대편 차와 밀착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공간을 가늠하는 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말들은 담지 않기로 했다. 감정 쓰레기를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취할 건 취하고 반납할 건 반납하기로 했다. 그것이 무례한 사람으로 인해 소중한 나의 하루를 망치지 않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