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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Jun 11. 2021

그 사과 안 받아

지금은 받고 싶지 않아


방과 후, 두 아이가 씩씩 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한 아이는 마스크 끈 마저 끊어져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두 아이의 기분을 대신 말해줬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도 전에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말문을 연다.


"얘가 저를 놀렸어요!"

그 말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상대편 아이가 반박을 가한다.

"너도 놀렸잖아!"

"네가 놀려서 내가 놀린 거지!!"

오고 가는 말들이 테니스 공처럼 빠르게 오고 갔다.

둘이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흥분으로 가득 찼던 두 아이의 말도 차츰 가라앉는다.


'누가 먼저 이 싸움을 시작했는가'를 놓고 다투다가 한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말의 테니스 시합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났다. 승리를 거머쥔 아이의 표정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처음 시작했다고 생각한 아이는 상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넸다.

"미안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을 뿐이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졌을 것이고, 동시에 이 상황에 대한 억울한 마음이 샘솟았을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아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지금은 그 사과 받고 싶지 않아."

예상하지 못한 말에 사과의 말을 건넨 아이도 멈칫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받아줘."


두 아이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교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사과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사과는 받고 싶은 사람이 받고 싶을 때 받는 거란 걸. 의례적으로 건네는 사과와 준비되지 않은 용서. 익지 않은 사과에서 떫은 맛이 나는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용서는 마음에 떫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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