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오다 약국 근처의 문구점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셈이지요. 그저 구경만 하겠다는 신뢰 없는 설득을 시도합니다. 이럴 때만 우애 좋은 남매 등장입니다. 결국 눈으로만 보겠다고, 떼쓰지 않겠다는 약속받은 이후 입구로 진입합니다. 작은 얼굴들 위에 퍼지는 감정은 이미 광대뼈를 승천시키고 있었습니다.
매장 안에는 병원을 들리고 나온 같은 처지의 보호자들이 몇몇 보입니다. 이곳의 장점이자 단점은 윈도쇼핑을 오래 해도 괜찮은 분위기입니다. 일부러 자리를 그렇게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건물 통째가 학원, 병원, 식당이 빼곡하기에 이런 전략이 먹히는 것이겠지요.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다이소 일 수도 있겠습니다.
펜, 지우개, 노트, 도화지 등 문구 용품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포토 카드, 말랑이, 장난감 칼과 다양한 XX핑들이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름이 문구점이라고 했으면서 이곳에 왜 이런 것들이 있을까요? 한 발 양보해서 캐릭터 도장과 같은 종류들은 문구 또는 팬시라고 우긴다면 이해하겠으나 당최 엄마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곳입니다. 이러니 아이들은 넋을 빼고 이끌리듯 따라오지요. 물론 동네여도 사업을 하는 이들이기에 그저 타깃팅을 제대로 했다며 그들의 수완을 높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은 15분.
입장과 동시에 몰입의 경지를 보여주듯 이미 엄마의 손을 놓았습니다. 반짝거리는 두 눈동자로 그 많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집중합니다. 누가 보면 문구 회사 회장님인 줄 알겠습니다. 이때만큼은 눈으로 담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머릿속에서 다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사이좋은 남매가 서로를 부르며 애타게 찾습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대단한 물건에 대해 한쪽이 말문을 트면 이에 질세라 본인의 생각을 어필합니다. 약간 만담처럼 보이지만 나름 그들만의 토론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15분이라는 순간은 아이들에게 찰나와 같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매우 더디게 흘러갑니다. 막연히 장승처럼 서 있기 힘들어 저도 슬며시 고개를 돌립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 시간에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도화지부터 꾸밈 아이템들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펜은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저 또한 중학교 때 들고 다니던 벽돌만 한 필통의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는 모든 펜을 다 쓰지도 않을 거면서 왜 또 다 쓸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사들였는지. 친정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와닿습니다.
이제는 시선을 넘어 다리가 천천히 움직입니다. 이제 곧 연말이라고 새로운 다이어리까지 진열해 두었어요. 매년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으나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로 늘 남편이 외부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제가 살 물건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양도 예쁘고 훨씬 실용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태에 슬며시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에 홀딱 빠졌다면 어른인 저는 앙증맞은 팬시 쪽으로 한 발이 빠져버렸어요. 양손 가득히 들려있는 아이들의 가방과 약 봉투와는 달리 마음은 이내 시대를 뛰어넘어 교복 입은 여중생이 되어 버렸지요. 늘 부족한 지갑 사정도 비슷하다 보니 그때와 지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요. 그나마 단 하나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다행인지 저에게 약간의 이성이 남아있었어요.
약속된 15분은 덕분에 금방 지났습니다. 바닥에 남아있던 자그마한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여태 행복 속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곤 서둘러 입구를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의 시선은 제각기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빼고는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구점은 블랙홀 같아요.
처음 발을 디딜 때에는 속도가 점점 붙어가지만 출구를 향하고 문 밖을 나설 때에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처럼 무언의 힘이 뒤에서 잡아당기니까요. 저 또한 그랬음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두 아이는 집에 오는 길에 자신들이 골라둔 물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대화 행렬에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만 그들이 눈여겨본 것들은 조만간 산타 할아버지가 준비해 주실테고, 저는 지갑만 털릴 예정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이소로 갈 걸 그랬어요.
아이들도 전부 보는 눈이 있다고 본인들 마음에 드는 것들은 항상 크고, 멋지고, 비쌉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감기 때문에 병원은 가야 할 것이고, 약국도 가야 할 것이며, 그 옆에 있는 문구점에 다시 방문해야지요.
문구점은 딱 필요한 교구 정도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예전 여중생 시절에도 문구점은 교구만 있지 않았어요. 때문에 방앗간처럼 다녔겠지요. 다만 제가 성장을 한 만큼 이 분야도 눈부신 성장을 했다는 사실이 웃프게 느껴집니다.
짧았던 15분이었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빠져들었고 저도 추억과 함께 신세계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뭐라고 잔소리를 할지언정 이곳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곳이에요. 정말 멈출 수 없는 이유가 가득한 행복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