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꽃 선물 받는 여자

by 그냥사탕

2025년 4월의 어느 날.

꽃 피는 계절, 봄이 왔다.


얼마 전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많은 비와 쌀쌀한 날씨가 등장했으나 이 또한 며칠뿐.

매서운 비바람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과 만개한 꽃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이렇듯 화창한 봄이 다가오면 우리 집 꼬마 숙녀는 하루 종일 탄성을 지른다.


"우아~ 우와~ 우우우우우오오오오오와~~~"


민들레, 철쭉, 영산홍, 라일락...

고개만 돌리면 어디서든 보이는 꽃들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새끼손톱만 하게 보이던 꽃 봉오리들이 언제 이렇게 활짝 폈는지 성장 속도가 무섭다. 덕분에 5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까지 30분이 걸린다. 이건 어린이집 다닐 때 졸업한 줄 알았으나 여전히 일관성 있다.



알록달록한 꽃들 사이에 얼굴을 박고 무슨 향기가 나는지, 꽃잎과 줄기는 어떤 색인지 탐색한다. 여기에 꽃 한 송이, 한 송이에게 모닝 인사를 건네다 보면 나에게는 기다림의 한세월이다. 지금이야 집에 있는 엄마이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라면 이미 나의 울화통은 머리 꼭대기에서 비상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을 테다.

꽃이 지천인데 각각 한 마디씩만 해도 시간 정말 많이 걸린다.


한잠을 그 사이에서 서성이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이미 망부석이 되어 기다리던 엄마가 생각났나 보다.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두 팔 벌리고 뛰어오는 꼬마 아가씨 손에는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서서 두 손으로 조심스레 건네준다.

'오늘은 요 친구가 간택당했구나'


가련한 꽃 한 송이가 고사리 손에서 내 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나는 모범 답안을 입 밖으로 꺼냈다.


"우와~ 우리 딸 너무 고마워.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많은 꽃들 중에서 가장 예쁜 걸로 골라왔네. 엄마는 우리 아가한테 귀한 선물 받으니까 너무 행복해"

엄마의 후기를 들은 아이의 말간 얼굴은 오늘도 무사히 등원을 해 주시겠다는 의미의 미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이 구역의 연기 대상은 나다.


매일 같은 패턴, 매일 같은 대사, 그리고 매일 같은 반응.

기다림은 속이 터지지만 그나마 결과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다.



값비싼 선물들도 있겠으나 우리 집 꼬마 숙녀는 자연이 준 선물을 최고로 쳐준다.

순간이 주는 행복은 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물을 건넨다는 것이 공주님에게는 훌륭한 보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정작 나는 그녀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돌이켜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뱃속에 있을 때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저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한글 좀 했으면, 스스로 양치를 했으면, 반찬투정 없이 골고루 잘 먹었으면...

돌이켜보면 전부 시답지 않은 이유에서 상대를 위하고 있다는 핑계를 들먹였다.


아무런 조건 없이 엄마니까 예쁘고 사랑하고, 이유 따지지 않고 믿는 그런 존재에게 나는 너무 세간의 잣대를 들먹이고 있었나 보다.


고심해서 고른 꽃 몇 송이를 자랑스레 건네주었던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사진 한 장을 찍어두었다. 나에게 남은 증거라고는 고작 사진 한 장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찰나의 무한한 마음은 내 안에 함께 저장되었다.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 도용되지 않도록 저작권 등록까지 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을 가져간다고 해서 속에 들어있는 많은 감정들과 기억, 마음, 행복까지 훔쳐가지는 못할 것이다. 꽃 한 송이 안에 들어가 있는 깊은 풍요로움은 오직 나뿐만이 알 테니 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삶이 고단하다는 핑계로 감성이 메말라 있던 나에게 오늘도 몇 방울의 촉촉함이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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