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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대디 Mar 29. 2023

거짓 악플러. 고소할까?

[명예훼손죄] 그러니까 명예가 뭐냐고요.


내 약국에 거짓 후기가 달렸다


어느 날 약사 A가 운영하는 약국에 손님 B가 찾아왔다. 가래가 심하다며 약을 찾는 B에게 A는 좋은 진해거담제를 추천해 주었다. B는 빨리 낫고 싶다며 약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보조약품도 추천해 달라고 했고 B는 A가 추천한 진해거담제와 영양제를 함께 사갔다.


A는 얼마 뒤 포털사이트 자신의 약국 후기란에 B가 써놓은 글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진해거담제를 달라고 했을 뿐인데 A가 전혀 무관한 피부보습제를 끼워 팔았다는 거짓 내용의 글이었다. A가 먼저 영양제 구매를 권한 것도 아닐뿐더러 A가 추천한 것은 피부보습제가 아니라 종합영양제였다.


B의 글에는 '눈 뜨고 호구짓 당했다', '끼워팔기에 돈 뜯겼다'등 A를 사기꾼으로 보이게 할 만한 표현들이 가득했고, B는 그 이후에도 여러 게시판에 같은 내용의 글들을 게시했다. B는 작심하고 A의 약국을 망하게 할 작정인 듯했다. A는 약국 걱정과 억울함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B를 처벌할 수 있을까?


B는 A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허위의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B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A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고, B가 경쟁 약국의 이해관계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B의 행위가 형법상 범죄에 해당한다면 B는 처벌받아야 한다. 죄명은? 바로 그 유명한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이다.


요즘 '명예훼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자주 보인다. 누가 무슨 기분 나쁜 말만 하면 명예훼손이란다. 하지만 상대의 발언으로 내 감정이 상했다고 모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정확히 알아보자.



명예훼손죄가 되려면?


어떤 발언이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면 세 가지만 확실히 기억하자. '사실', '사회적 평가', 그리고 '전파 가능성'이다.


(1) 사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사실'이란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의 반대말이다. 본인의 주관적 평가가 아닌 객관적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A는 정말 심하게 못생겼어"라는 진술은 개인적 의견이므로 그가 보기에 A가 정말 심하게 못생겼더라도 여기서 말하는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A가 옆집에서 돈을 훔쳤어"라는 진술은 설령 그 말이 거짓이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므로 '사실'에 해당한다.

B가 게시한 "A가 질병과 무관한 피부보습제를 끼워 팔았다"는 표현은 B의 개인적 의견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므로 그것이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사실'에 해당한다.


(2) 사회적 평가

명예훼손죄의 '명예'는 개인적 감정이 아닌 사회적 평가를 의미한다. 상대방의 발언을 듣고 분노가 올라와 매일같이 이를 곱씹으며 마음의 병이 생겼다거나, 나를 포함한 엄마, 아빠, 조상님들의 명예까지 나락으로 추락한듯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해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대의 발언으로 나의 사회적 평판이 저해될 위험성이 있어야만 한다.

B가 작성한 게시물을 읽은 사람들은 'A는 질병과 무관한 약품을 끼워 팔기 하는 나쁜 약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는 약사로서의 A에 대한 신뢰 즉 사회적 평가를 훼손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A의 감정이 얼마나 상했는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다.


(3) 전파 가능성

형법 제307조에는 '공연히 명예를 훼손한 자'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공연히'라는 표현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했다는 말이 아니라 '전파 가능성' 즉 소문날 가능성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B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위 게시물을 올렸다. A의 약국을 검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B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글을 읽은 사람들은 글을 퍼가 다른 곳에 게시할 수도, 친구들에게 글의 내용을 구두로 전달할 수도 있다. 즉 불특정 다수인에게 소문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B는 거짓 후기로 '사실'을 적시하여 A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했고, 그것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명예훼손죄를 범한 것이다.



사실?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제1항)'와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제2항)'로 나뉜다.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제2항)는 '고의로', '허위사실'을 퍼트려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자를 가중처벌 하기 위한 규정이다. 즉, '허위임을 알면서' 명예훼손 행위를 하였다면 제2항이 적용되어 더 무겁게 처벌되고, 명예훼손의 내용이 '진실'이거나 '허위사실인 줄 모르고'하였다면 제1항이 적용되어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된다.


B는 본인이 먼저 보조약품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으면서 마치 A가 임의로 끼워 팔기 한 것처럼 거짓말한 장본인이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장본인이 자신의 진술이 허위임을 몰랐을 수가 없다. 따라서 B는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제2항)로 더 중하게 처벌받는다.



무서워서 후기도 못쓰나?


가게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후기를 작성하면서 가게 주인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가 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각오를 하고 후기를 써야 하나? 그렇지 않다. 우리 형법은 다 길을 마련해 두었다.


형법 제310조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제1항)'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며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즉, 공익을 위해 진실한 사실을 알린 것이라면 설령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이 있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추후 그 가게를 방문할 다른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후기를 작성했다면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낸 경우가 아닌 한 처벌대상이 아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고의로 허위사실을 게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후기를 작성할 때에는 작성한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를 명확히 검토한 후 게시하도록 하자. 만일 허위사실을 진실로 착각하고 게시한 경우 그 믿음에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밝혀야만 처벌을 면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조심하는 편이 낫다.


B는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냈으므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것도 아니고,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짓정보를 바탕으로 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므로 공익을 위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형법 제310조에 의해 처벌이 면제되는 경우가 아니다.



온라인 명예훼손, 더 나쁜 짓인가?


피해의 정도가 클수록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지인 몇 명에게 소문을 낸 경우보다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한 경우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임은 명백하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으로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 행위'를 더욱 무겁게 처벌한다. 전반적인 내용은 앞서 설명한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같으나 위 조항으로 가중처벌되려면 추가적으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즉 '사람의 인격적 평가를 저해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명예훼손 행위를 한 경우에만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된다.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법원이 사안에 따라 판단하나, 만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사람을 '비방할 목적'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정보통신망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여전히 성립할 수 있다.


거짓말을 지어낸 B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유 여하 불문하고 거짓정보를 제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은 오히려 공익을 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B는 단순히 허위 사실을 적시만 한 것이 아니라 '끼워팔기에 돈 뜯겼다'등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B에게 읽는 이로 하여금 A가 사기꾼이라는 인상을 갖게 함으로써 A의 인격적 평가를 저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B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가중처벌 될 것이다.



마치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이 되는 핵심가치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 행사가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해 그를 더 이상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죄를 규정하여 위와 같은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나, 요즘 온라인상 명예훼손적 표현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내 감정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감정도 중요하고, 내 명예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명예도 중요하다. 권리에 의무가 따르듯 표현의 자유 행사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살다 보면 서로 감정 상하는 말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사회적 평판'을 '소문날 정도로' 훼손하지는 말자. 특히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거나, '온라인상' 퍼트린다면 더 무겁게 처벌될 수 있다.


만일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면 가해자에게 그의 행위가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됨을 알리고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청하자. 그럼에도 사과하지 않는다면 뭐 어쩌겠는가? 가까운 경찰서로 달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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