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조각
• 오늘 하늘이 정말 파란 걸까요?
• 나는 정말 운이 없는 걸까요?
•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인 걸까요?
한때는 세상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진실은 눈에 보이고, 사실은 증명할 수 있기에, 세상을 팩트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변치 않는 분명한 기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칭찬으로 들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꼬는 말로 들립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좋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배아픈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매일 신나게 듣던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슬프게 들리기도 합니다.
칭찬도, 좋은 일도, 신나는 노래도 결국 세상에 대한 우리의 해석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식, 생각, 감정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파란색 색안경을 낀채 '하늘은 파란색이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객관적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객관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해석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깊은 산속 동굴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심한 갈증을 느낀 그는 주변을 더듬으며 물을 찾았습니다.
그때, 손에 작은 그릇 같은 것이 잡혔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목이 말랐던 그는 아무 고민 없이 물을 그대로 들이켰습니다.
차갑고 시원한 물이 목을 적셨습니다.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물은 처음이다."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기분 좋게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동굴 안을 비추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지난밤 손에 쥐었던 것은 그릇이 아니라 징그러운 해골이었습니다. 그가 어젯밤 시원하게 들이켰던 물은, 해골 속에 고여 있던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역겨움에 구역질이 났고,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변했구나.'
물이 본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 물을 깨끗하다, 혹은 더럽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라는 진리를요.
원효대사는 더 이상 당나라로 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바깥의 지식을 구하러 가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신 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원효대사의 해석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가 해석한 대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풍경도, 같은 말도, 같은 사건도 각자의 색안경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원효대사는 '어떤 물건'에 담긴 물을 마셨습니다. 그가 그것을 '그릇'으로 인식했는지, '해골'이라고 인식했는지에 따라 물에 대한 그의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인식을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낮과 밤이라는 외부적 환경 즉, 그가 처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대상도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도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친구'라고 인식하는지, '적'이라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성장할 기회'라고 인식하는지, '시간낭비'라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그 경험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선’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흔이 되고 나서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본 것이 진실이고, 내가 내린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쉽게 단정하고, 판단하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 내 상식과 다른 행동을 해도 '내 기준, 내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려 합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삶을 해석하는 방법을 새롭게 익히고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고 나니, 세상은 전보다 훨씬 덜 복잡하고, 덜 예민하고, 덜 피곤한 곳이 되었습니다. 틀린 것도, 지적할 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해할 여지가 많아졌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힘들게 했던 건 세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만이 객관적이라는 고집을 내려놓고 더 넓게, 더 유연하게, 그리고 더 깊이 바라보려 합니다.
색안경을 완전히 벗을 수는 없더라도, 안경알을 다른 색으로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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