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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Mar 18. 2019

내 말을 들어 줄 누군가

우리는 모두 대나무숲이 필요하다

방송위원회 민원실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인턴과 아르바이트의 중간쯤 되는 단계의 업무였다. 당시만 해도 인턴이라는 단어 자체가 자리잡기 이전이라 모든 파트타임 업무는 학과외 업무라는 단어로 묶였다. 나름대로 4대 보험이 적용되었고 월급도 나쁘지 않았다. 주된 업무는 민원전화를 받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방송위원회 소관의 민원은 접수받아 담당자에게 넘기고, 다른 기관의 민원으로 판단되면 이관시키는 등의 업무였다.


방송위원회로 걸려 오는 민원전화이니 방송 내용이나 심의에 대한 사항일 줄로 믿은 것은 무지의 소산이었다. 대부분은 돈에 대한 것, 즉 방송요금에 대한 것이었다. 집에 TV 가 없는데 왜 시청료를 납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민원과 케이블 TV 방송사의 요금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루었다. 간혹 방송 내용에 대한 민원도 있었는데,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아닌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결국은 방송도 민원도 생계에 대한 고민과 분노에서 출발했다. 먹고 사는 것이 고단한데 누군가의 거저 얻는 삶을 보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또 그런 종류의 대나무숲을 지키고 있다. 좋은 이야기도 볼멘소리도, 생산적인 제안도 주관적인 불평도 모두 관리하는 자리. 칭찬이나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덩달아 기쁘지만 불만이나 지적을 전달할 때는 내 탓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무겁다. 익명으로 접수되는 이야기들은 나만이 작성자를 알 수 있다. 간혹 사실 확인을 위해 당사자에게 확인 전화를 하면 그들은 매우 기뻐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다.


듣는 나는 조금 힘들지만 말하는 그들은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묵묵히 듣는다. 그들의 마음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일이리라.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내 목소리가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포용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대나무숲처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인생에 다시 없을 귀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에게는 대나무숲에 외칠 용기조차 없다는 것. 늘 모든 일들과 모든 생각을 혼자 싸매고 동굴로 들어가 버리기에, 발설하고 발화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묵혀 왔던 이야기를 털어내야 하는데. 한번쯤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대숲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큰 소리로 외칠 자신은 없으니 조그맣고 나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속이 꽉 찬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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