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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11. 2019

밀가루만 끊었을 뿐인데

아주 끊은 건 아니고... 줄였습니다. 대폭.

재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아토피인지 알러지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학교다닐 때 그 흔한 여드름 고민을 한 번 해 본 적 없을 정도로 피부는 자신이 있었다. 특별히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귀찮아서 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가면 피부관리 어떻게 하는지 빠짐없이 질문을 받을 정도로 피부는 늘 하얗고 맑았다. 사실 유전의 영향이 크다.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피부가 하얗고 고운 아버지와,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주름이나 모공이 거의 없는 어머니의 유산이다. 사실 내 피부는 부모님에 비하면 덜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피부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부가 흰 사람은 대체로 피부가 약할 가능성이 높다. 몸 바깥의 피부 뿐 아니라 몸 안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즉 내장기관이나 소화기관의 피부도 더 예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흰 피부의 병약한 주인공처럼, 이들은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유내약의 체질인 것이다. 게다가 작은 뾰루지나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확 티가 난다.


나의 피부염 증상은 주로 눈가에서 시작하여 볼 부분으로 번져갔다. 심하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이 붉은 톤의 눈화장이나 볼터치를 한 것으로 오해했다. 화장이 아닌 염증이므로 붉게 상기된 부분은 결코 대칭이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화장이 서툴러서 이상하게 화장을 한 것으로 종종 오인했다. 증상이 악화되면 더 붉은 기운이 강해지면서 피부가 심하게 건조해졌다. 가끔씩 이런 증상이 심해졌는데 추측하기로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나의 증상도 심해지는 것 같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 고생하며 동네 피부과를 전전하다가 우태하 한승경 피부과에 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명의의 포스가 느껴지는 선생님께서 증상을 들으시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피부 뿐 아니라 나의 몸 상태를 전반적으로 정확히 짚으셨다. 일단 나의 특징은 1) 장기능이 좋지 않아 각종 염증에 취약하고(비염 등) 2) 스트레스에도 취약하고 수면의

질도 낮으며 3) 식습관 개선의 필요성이 매우 강한 것이었다. 피검사를 통해 알러지 검사와 비타민 D 검사, 간기능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께서는 알러지가 없어도 밀가루 음식은 줄이는 게 좋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밀가루는 모든 종류의 알러지를 강화시키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무관하지만 나와 같이 '저질체력'과 '저질면역력'과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은 더욱 부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아예 못먹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괴롭고 오히려 더 먹고 싶어질 수 있으니 다른 것으로 조금씩 대체하라고 하셨다. 쌀국수나 떡이나 쌀빵 등등. "절대 먹으면 안 돼" 라고 하시지 않고 "안먹는 거 힘들지만 바꿔 나가야지" 라고 말씀하시니 왠지 할 만하게 느껴졌다.


피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다시 진료받기 전까지 약 10일 정도, 초콜렛은 끊지 못했지만 밀가루는 대폭 줄였다. 아예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빵도 과자도 라면도 조금은 먹었다. 회사에서 괜히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찍힐까봐 못먹는다고 할 수가 없었다.) 많이 줄였고, 유제품이나 육류도 거의 먹지 않았다. 대신 아몬드 음료나 두유, 두부, 계란, 올리브오일 등은 마음껏 먹었고 빵에 대한 욕구는 쌀빵과 떡으로 대체했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식습관을 개선하면서 일주일만에 피부는 씻은듯이... 까지는 아니어도 대폭 나았다.


피검사 결과 집먼지진드기와 먼지 종류에 대한 알러지가 있었다. 의외로 먹는 것에는 아무런 알러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셀프 임상실험으로 인해 너무나 명확해졌다. 또 특이한 사항은 비타민 D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온 것이었다. 비타민 D 수치는 30~100 범위를 정상으로 간주하는데 나는 고작 14 정도라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좀 부족했다. 이정도면 주사를 맞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충해야 한다. 비타민 D는 면역력을 좌우하는데 이 수치가 낮으니 면역이 떨어져 각종 염증에 취약해졌던 것이다.


아토피인지 알러지인지 알 수 없는 피부의 이상 증상이 성인이 되어 갑자기 발현하는 사례가 지인들에게서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사실 비단 피부의 문제는 아니다. 피부에 티가 날 때는 이미 다른 곳의 기능도 저해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비타민과 영양제, 각종 면역증진식품은 이제 뗄레야 땔 수 없어진 나의 친구들. 몸에 좋은 것이 모두 입에 쓴 것은 아닌데, 입에 착 붙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에는 좋지 않아 자꾸 착잡해진다. 어쨌거나, 밀가루를 줄인 지 3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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