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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17. 2019

천사는 택시기사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체 사람 인대가 이렇게 쉽게 파열될 수가 있는 것이던가. 그냥 계단에서 넘어졌을 뿐인데 인대가 파열되었다. 회사 옆 정형외과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엑스레이를 추가로 찍으시며 “인대가 찢어졌으면 수술해야 한다”고 하셔서 바짝 얼어 있었는데, 다행히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휴.


그나저나 사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삼 년 전, 발목 골절로 깁스를 했을 때는 망연자실하고 당황스럽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한 번 다쳐봤다고 두 번째 깁스는 체념적 여유가 생겨버렸다. 삼 년 전처럼 압박붕대를 아침저녁으로 칭칭 감아야 하나, 귀찮은데, 생각했는데 다행히 골절이 아니고 인대 파열이라 깁스 지지대(?) 같은 것을 착용하는 것으로 된다고.


덕분에 회사에서 하루종일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일단은 다친 사유가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웃고, 이건 늙어서 그런거다, 깁스 평생 한번도 안해보는 사람도 많은데 넌 어째 번갈아 하냐, 요즘 깁스 지지대 좋아졌네 등등 화제만발. 아 물론 저는 웃는게 웃는게 아니예요... 실제 통증이 꽤 심한데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 좀 위로가 된다.


그러나 역시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것. 퇴근길 택시를 탔는데 머리가 희끗하신 기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불편하지요?”

“네.”

“그래도 낫는 거니까 조금 참아봐요. 평생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네요...”

다쳐서 왠지 모르게 억울하고 우울하던 기분이 대번에 감사함으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파리의 Shakespeare & Company 서점 벽면에서 본 문구가 문득 생각났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오늘 나는 택시기사님의 모습으로 변장한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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