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든 요리당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단맛의 본질은 위안이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하위 계층에서 비만율이 높게 나타나는 까닭이 본래 그들이 건강한 식단에 접근하기 어려운 불평등한 사회 조건만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른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설탕과 초콜릿을 비롯한 단맛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이 가장 주된 요인이다. 그래서일까. 서양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허니(honey)라고 부른다.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6, ‘단맛, 첫키스 같은’ , 2015.7.9 조선일보
단맛의 본질은 위안이다……. 제법 여러 해 전 읽은 칼럼인데 이 구절은 마음에 새겨진 듯 선연히 기억이 났다. 그 때에도 이미 미각을 통한 달콤함으로 마음을 버텨내고 있었다. 매일 회사에서, 혹은 퇴근길에 케이크며 초콜릿을 먹는 것은 자그마한 사치이자 위로였다. 드라마에는 주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온다. 멋지게 마티니 같은 것을 한 잔 하고 싶지만, 실상 술을 하지 못하기에 대신 단맛에 의존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심리적 허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단 음식과 군것질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이것은 유전일 것이다. 엄마도 그러니까. 이것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나마 집에서 가족들과 살 때에는 엄마아빠의 통제라는 외부적 요소로 인해 단 것을 강제로 자제당했지만, 혼자 나와 살게 되자 제동장치가 풀린 전동차처럼 단 것에 대한 탐닉이 폭발했다. 케이크 한 개를 사서 혼자 다 먹은 적도 있다. 회사 상사는 잘 먹는 후배가 예쁘다며 사과잼이 든 사람 얼굴만한 소보로빵을 연일 사다 주셨다. 남들은 1/4 정도 먹으면 배부르다는데 나는 혼자 두 개 쯤은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찐다며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했다.
아마도 살이 ‘안’ 찐 것이 아니라 ‘못’ 찐 것이었을 테다. 단 것을 많이 먹는 대신 정작 생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는 잘 섭취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다른 사람들이 정상적인 식사로 채우는 칼로리를 오로지 단 것으로만 채웠기 때문일 테다. 원래부터도 고기라던가 튀김 같은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가 먹고싶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소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먹고싶지가 않았다. 사람들과 뷔페를 가도 남들은 값비싼 고기며 해산물로 접시를 채우기 바쁜데 그런 것들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디저트만 두세 접시를 먹었다. 고기나 튀김 같은 고칼로리 음식이나 피자나 치킨,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몸은 속수무책으로 불어났을 것이다.
결혼을 하기도 전에,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이미 단 것에 대한 갈망은 크게 줄어들었다. 신기했다. 낯선 사람을 장시간 만나는 일은 긴장되는 일이다.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며 당이 떨어져서 단 것을 먹어대기 일쑤였는데 남편을 만나고 집에 들어오면 그다지 당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동안 군것질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남편에 대한 확신을 준 여러가지 시그널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르겠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즐거움과 충만함의 신호가 몸으로도 전달되었던 것이다. 남편을 만나며 조금씩 건강해지기도 했다. 몸의 건강을 회복하려면 먼저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냉장고 한 칸을 늘 채우고 있던 군것질거리는 이제 상당부분 자취를 감췄다. 물론 결혼했다고 하루아침에 군것질을 뚝 끊을 수는 없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아직도 초콜릿이나 케이크, 와플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배달 앱의 디저트/카페 카테고리를 뒤지며 디저트 메뉴를 정독한다. 그렇지만 욕망은 덜해졌고 자제력은 더해졌다. 그나마도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 대체재를 찾지만, 남편과 함께 있는 주말은 디저트에 대한 갈망이 현저히 줄어든다. 아마도 남편이 나에게 당류가 주는 순간적인 기쁨보다 더 큰 위안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를 '허니'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인생의 가장 큰 달콤함을 주는 사람이 남편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원래부터 군것질을 하지 않는 남편은 어떻게 설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