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내 생일이었다. 결혼 후 첫 생일. 남편과 한가롭고 오붓하게 데이트를 할 참이었다. 미리부터 휴가를 내 놓고 남편이 있는 곳에 갈 버스표를 끊어놓았다. 평일 오후에 남편에게 가는 길은 귀향길 같기도 하고 소풍가는 길 같기도 하다. 예쁜 옷을 입고 가서 남편에게 칭찬을 들어야지. 옷을 몇 번을 갈아 입었는지 모른다. 남편은 오후 반차를 내고 부인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있는 인근 대도시에 새로 생긴 멋진 식당도 예약해 놓았다. 남편은 나보다 더 설레면서 음식점이 정말 좋다고, 검색해 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집에서 레토르트 미역국을 끓여 먹어도 좋을 신혼에, 우리는 제대로 신이 나 있었다.
이번 주는 생일 주간이다. 우리 부부는 생일이 멀지 않다. 남편 생일 역시 며칠 전, 대선 전날이었다. 남편도 나도 휴가를 냈고, 아침부터 일어나 한우 안심을 넣은 소고기 미역국과, 투플러스 등급의 고기를 사서 넣은 잡채와, 전복 버터구이까지 차려 주었다. 결혼 첫 생일에는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하고 차려주고 나니 주방은 초토화가 되었다.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오마카세를 예약해서 제법 근사한 저녁도 먹었다. 다음날도 휴일이었기에 연이틀을 꼭 붙어 지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다. 남편은 연신 몸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오미크론이 아닐까?"
"목이 아파? 증상이 어떤데?"
"목도 아프고 몸살 기운도 있는 것 같고... 집에 감기약 있어?"
"타이레놀밖에 없는데 어쩌지. 일단 이거라도 먹어봐."
그리고 내 생일날 남편은 메시지를 보냈다.
'나 양성 나왔어.'
자가진단 키트 결과 양성이 나온 남편은 그 길로 선별진료소에 갔고, 다음 날 pcr 검사도 양성 판정이 나왔다. 그렇게 내 생일은 지나갔다. 생일선물로 양성 판정을 받아온 남편에게 배민상품권을 보내주고 쓱배송으로 먹을 것들을 보내주며 헛웃음이 났다. 속상했다. 그러나 속상함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완전치 않은, 서글픔과 걱정과 허탈함이 한데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시국이 시국이라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는데 생일마저 이렇게 넘어가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셀프 생일축하라도 해야겠다 싶어 동네 인근에 있는 제법 유명하다는 케이크 가게를 찾아 갔다. 지도를 찾아보니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길래 운동삼아 걸어갔다. 그런데 케이크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를 헤매다가 찾아보니 케이크 가게는 얼마 전 문을 닫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버티기가 어려웠나 보다. 이래저래 코로나가 미워지는 날이었다. 그렇게 '내돈내산'으로라도 먹으려 했던 생일케이크도 허탕을 쳤다. 돌아오는 길은 그냥 버스를 탔다. 집에 있으면 더 울적해질 것 같아 괜히 늦게까지 동네를 산책하다 돌아왔다. 하필 금요일이라 북적이는 음식점과 웃음 가득한 사람들을 보며 발걸음에 힘이 빠졌다. 태어난 것이 대단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오늘같은 날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하다니 우주에 배신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허탈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편은 밤 늦게 화상전화를 걸어 집으로 배송된 케이크를 보여 주었다. 비록 물리적으로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축하를 했다. 남편은 미안해 했고 부인은 마음아파 했다. 첫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남편도, 아픈데 함께 있어주지 못해 마음아픈 나도, 모두 안타까웠다. 그래도 케이크는 너무나 예뻤고, 화면으로 케이크를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케이크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우리 앞길이 항상 행복하길'. 흔한 생일 축하 문구 대신 고심해서 문구를 골랐을 남편의 마음에 괜히 마음이 울렸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물흐르듯 흘러가지는 않을 수 있다고. 예측불가의 상황이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이런 해프닝 덕분에 우리의 첫 생일은 더 길이길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 남편, 우리의 앞길이 항상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