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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Mar 19. 2018

돈의 타임슬립

월요일은 사라지지 않으나 월급만이 사라진다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로 요약된다.

태초에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이는 신과 인간을 향한, 운명과 의지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문명이 발달하며 권력과 부, 자유와 평등을 향한 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이 연장선상에 있는 지배와 피지배, 남성과 여성, 종교와 인종에 대한 투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사회와 인구 구조와 변화는 과거에 생각지 못했던 또다른 투쟁을 끊임없이 양산해 낼 것이다. 또한 이 투쟁과 병행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법률, 과학과 기술 역시 발달할 것이다.  


널리 행해진 투쟁 중 하나는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때 이것은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제의를 맡은 자는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기도 하고 앞날을 점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행위는 샤머니즘일 뿐 과학의 영역까지 근접하지는 못하였다. 그 시대의 의식과 과학 수준의 한계에서 인류가 분투한 흔적일 뿐이다. 점차 비약적인 발달을 거듭한 과학과 기술은 이 간극을 상당 부분 좁혀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기록과 유물로 과거를 유추할 수 있고 정교한 계산과 이론으로 미래를 추측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과거와 미래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고 복원하거나 가설을 세우거나 청사진을 그려낼 수 있다. 그 시대를 직접 오갈 수는 없다 해도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체험할 수 있고, 활자나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 인간이 단기적이나마 시간을 초월하여 삶을 살게 하는 수단이 있다면,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돈이다.


우리는 사진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일기로 지난 날을 회상하며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산물들은 100% 사실이되기에는 부족한 편린들이다. 기억은 얼마나 쉽게 재편되고 기록되지 않은 지난 일들은 얼마나 많으며 앞날이란 얼마나 예측 불가한 것인가.

돈은 이런 위험이 없다. 과거의 지출 내역은 정확히 계산되어 미래의 카드 결제대금에 반영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현재의 즐거움은 아무런 왜곡 없이 눈 앞에 나타난다. 지불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바로 환산하여 그 효용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지금 계좌에 잔액이 부족하더라도 미래의 현금 흐름을 현재로 불러와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누락이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신용카드사의 '보이지 않는 손'과 future cash flow 라는 마법의 힘이다. 현금이나 체크카드만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시간성이 구태여 필요치 않겠으나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다음달의 보너스나 추가 수당이나 특별상여금 등을 미리 계산하여 현재의 소비에 반영한다. 이 혜안은 놀랍도록 치밀하게 발휘되며, 수학이나 산수 실력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김생민의 영수증'에 제보하여 '수퍼 스투삣'을 받을 만한 일이 반복된다. 그러나 새 옷을 입고 새 구두를 신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자꾸만 '그뤠잇' 해 보인다. 그리하여 '그뤠잇'과 '스투핏'의 위치를 자꾸만 임의로 바꿔버린 채 살아간다.

봄맞이 지름신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이번달 카드값도 고이 접어 나빌레라.
아차. 카드대금 명세서는 아직도 부모님 집 주소로 발송된다. 이메일 청구서로 전환한다고 하고는 계속 깜박 잊는 탓이다. 어쩐지 오늘도 집에서 전화가 올 것 같다. 이런 때에 카드사의 일처리는 놀랄만큼 신속하며 열흘 정도 앞날에 대한 예측은 명확하고 명료하다. 통신사의 서비스와 통신 기술은 기꺼이 공간을 초월하여 부모님의 잔소리를 육성으로 듣게 허락한다.


인류 문명의 발달로 인한 혜택과 폐해를 동시에 체감하는 봄날이다. 카드를 긁은 것은 네 탓인데 왜 애꿎은 문명과 기술에 책임을 전가하느냐고 한다면...

그냥 열심히 일해야겠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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