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리쿠/ 권영주 역 (북폴리오)

by 소연




온종일 집에 있어야만 하는 시기이다.
진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할텐데,
좀처럼 읽혀지지 않는 요즘이다.

인문서를 읽다가
도저히 그 내용들이 삼켜지지 않기에
그 책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한 온다 리쿠의 소설....
4~5년 전에 지인으로 부터 추천받은 그녀의 소설을 사놓고
이제서야 펼쳐본 것은,
어쩌면 이 책을 맞이할 완벽한 3월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꽃이 피고, 햇살이 눈부시고,
파란 하늘이 빠꼼빠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런 아름다운 계절에 완벽히 반(反)하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3월을.....

한 권의 완벽한 책을 둘러싼 4개의 이야기.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니고,
어느 것도 가짜가 아닌
각기 다른 4개의 이야기가
결국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졌다.
마치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샴쌍둥이 처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심장을 공유하는 4개의 머리들 처럼,
이야기는 그렇게 붉은 피처럼 각자의 방향을 향하다
결국엔 심장으로 모여든다.

온다 리쿠는 이 책에 쓴 인물로 다른 소설을 쓰고,
이 책에 등장하는 책 속의 챕터 제목으로 또 다른 소설을 쓰고,
이 책에 언급한 사건으로 또 또 다른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결국, <삼월은 붉은 구렁은>은 그 이후에 나온 그녀의 몇몇 소설의 모체(母體)인 것인가!
문득, 발자크가 떠올랐다.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른 소설에 재 등장시켜
그의 소설들 전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발자크세계처럼 연결된다던.....
온다 리쿠 역시 그녀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인지도...

미스테리 장르는 재밌다.
다소 허황된 설정 탓에 유치해 질 수도 있지만,
유치함과 발칙함의 경계를 가르는 건
역시 작가의 재능이다.
온다 리쿠는 이 책의 마지막 챕터 <회전목마>에 나오는 늪처럼
은근하고 조용하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좋았다.
너무 요란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아서....

코로나로 인해 마냥 가라앉은 일상에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옅은 안개를 뿌린 듯한
이번 책이
참 재밌고 좋았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기에
딱 좋은 3월이었다.




바람 소리는 무섭다. 그것은 원시적인 공포다. 아주 먼 옛날, 산과 들에서 몸을 움츠리고 바람을 피하던 선조들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p.95-
언제나 우리는 밤 바다를 달려간다. 우리는 어둠의 바닥을 홀로, 원하지도 않은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p.133-
".......여자는 여자 그 자체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그 여자의 미래를 질투하는 거야. 어떤 멋진 사람을 만나서, 어떤 식으로 사랑받을지 상상하지. 그리고 그 여자가 사랑받는 자기의 행운에 만족하고 우월감을 느낄 걸 상상하면서 질투하는 거야. 난 아무리 아름답고 복받은 여자라도 감수성이 없는 여자는 질투하지 않아. 설령 어린아이라도, 자기를 꼭 끌어안고 싶어지는 기쁨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여자만 질투한단다......"
-p.156-
"....진짜 이야기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몰라. 존재 그 자체에 수많은 이야기가 보태져서 어느새 성장해 가는 것. 그게 이야기의 바람직한 모습일지도 몰라."
-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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