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부족해 글도 쓰겠다고?

생존 글쓰기


네. 한번 해보려고요. 삶을 지배하는 그 녀석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으니까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녀석들은 대체 어디에 사는 걸까요?

머릿속 복잡한 작업을 잠시라도 쉬면 어김없이 그리고 재빠르게 그 녀석들이 나타납니다. 작은 공간만 있어도 녀석들의 무대가 펼쳐집니다. 다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모두가 그 녀석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했기에 녀석들과 이별하려고 시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불가능해라고 단정했을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세포의 일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내기 위해 그나마 찾은 방법은 귀 속으로 계속 소리를 넣어주어 빈 공간이 조금도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었지요.


특별한 상황이나 근무시간을 제외하고 늘 이어폰을 달고 살았던 이유입니다. 20년 동안 소리로 혹사당한 오른쪽 귀가 이명을 내며, “이제 그만”하며 외치지 전까지는 말이죠. 이제 그만 귀를 해방시켜주고, 녀석들과 이별할 방법을 곰곰이 찾다 보니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녀석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살아야 했으니까요.

살아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림과 글쓰기는 꼭 닮았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동안은 녀석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올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에 쏙 들게 멋지게 그리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감 가도록 쓰려고 모든 에너지를 모아 몰입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작업의 초반과 끝날 무렵의 허술함을 틈 타 녀석들이 치고 들어오려 하지만, 그 정도의 공격쯤은 이제 막아낼 만합니다. 녀석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거든요. 그림을 완성하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서너 시간은 온전히 몰입하는 순간입니다. 세상 모든 불안함, 불필요한 긴장감, 극도의 예민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작업에 몰입하기에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아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입니다.


또한 그림과 글쓰기는 구겨지고, 찢겨 한없이 초라한 자존감의 숨통을 트여줍니다. 작은 선 하나까지 신경 써서 섬세하게 그린 그림과 고심하여 선택한 단어들로 조화롭게 쓴 글을 보면 잠시나마 나의 자존감을 반짝반짝 빛나는 것으로 바꾸어 줍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이라도 받게 되면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가슴속 뜨거운 이야기를 뱉어내지 않으면, 타버릴 것 같은 조급함도 어느 정도 사라지게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새창을 열고, 그리기 위해 종이를 펼치면 더없이 새하얀 진공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그리고는 오직 나를 위해 재촉하거나 보채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줍니다. 첫 문장과 스케치가 순백색의 공간에 새겨질 때는 짜릿함마저 느껴집니다. 밤새도록 소리 없이 내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은 학교 운동장을 처음으로 걷는 사람처럼 말이죠.


누군가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가슴 떨리게 설레는 이야기, 평생 나만 간직하고 있어 꺼내 놓을 용기조차 나지 않는 어두운 이야기, 그런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토해내면 그 무엇도 주지 못하는 시원함과 청량감, 통쾌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글로 풀어내기 위해 그 이야기를 수십 번 되감기 해보고, 곱씹어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만나게 됩니다.


그 녀석이 누군지 궁금하시다고요? 이제 말할 때가 되었군요.

강박은 “불유쾌한 감정이나 상념에 대해 환자 자신은 그 불합리와 비현실성을 의식하나 그것을 떨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 감정과 상념이 더욱 압박하여 정상적인 이성 판단과 병적 의식과의 갈등으로 빠져간다.


강박의 증상 중 하나인 불유쾌한 감정과 상념들이 그들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나쁜 일 중 최고의 것들만 그 녀석으로 변신해 내 몸 어딘가에 살게 되었나 봅니다. 단편적인 예로, 견디기 힘들 상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휴직을 신청하고, 근무 마지막 날 송년회를 했습니다. 송년회를 마치고 악수를 건네던 상사는 나에게 악담을 퍼붓고, 원망과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내 눈을 잠시 응시했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난 사건인데, 지금도 어김없이 나타나 그날을 떠올리게 하고, 그때의 나쁜 감정을 되새기게 하며 괴롭히는 것을 보니 대단한 녀석들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손을 자주 씻는다거나,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지 않았는지 불안해서 다시 집에 돌아가 확인해야 한 하는 것들만 강박인 줄 알았는데, 불유쾌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불안과 초조함을 일으키는 강박 사고라는 증상도 있더군요. 바로 그 녀석이 저와 함께 42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림과 글은 꼭 닮았죠.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그 녀석들과 잠시 동안 이별할 방법을 찾았거든요. 나의 생일에 함께 태어나 42년을 동거 동락한 녀석들인데, 영원히 이별할 수는 없겠죠.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증상의 강도와 횟수를 줄이는 노력을 통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녀석들은 보다 중요한 일에 써야 할 소중한 나의 에너지를 강탈합니다. 불유쾌한 생각들이 떠오를 때면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심한 편입니다. 삶의 에너지가 소모될수록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고, 신경은 더욱 예민해집니다. 결국 날카롭게 변한 내가, 나와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힘들게 할까 불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잠시 헤어질 방법을 찾았으니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과 그림에게 손 내밀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