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처음으로 1학년을 온전히 맡게 되어 1학기에 정신없이 한글 수업을 하다 보니 정작 한글로 쓰인 책을 풍성하게 읽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씩 시간 날 때에만 읽어줬더니 아이들의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한글도 소통하고 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데 어느 순간 한글만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내 국어수업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진짜 배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내가 꽤나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책 읽는 내가 마음에 들어서다. 책은 친구가 별로 없어도 외롭지 않게 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나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짐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몰랐다. 조금 둘러왔지만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선물로 해주고 싶었다. 궁금한 게 있거나, 내 삶을 조금 변화시키고 싶을 때 혹은 공감과 위로받고 싶을 때 책만큼 묵묵하고 든든한 친구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서 조금 더 일찍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여정을 거쳐 나는 2학기부터는 매일 그림책으로 아침 열기를 다짐했다. 우리 반이 한글을 조금 더 좋아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나아가 책 읽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랬는데 동시에 매일 아침 그림책 읽어주기는 나를 위한 선물이 되어버렸다. 그 전날 혹은 당일 아침에 고르기도 하는데, 지금 공부하고 있는 통합 교과 주제와 관련된 책,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책 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면 약간은 긴장된 아침 1교시를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고, 그런 나의 부드러워진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조금 편안하게 하루를 열 수 있기도 하다.
하루는 앤서니 브라운의 ‘기분을 말해봐’라는 책을 골랐다. 유치원 때 읽어봤다는 아이, 자기네 집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많다는 아이 모두 자기 이야기를 내뿜었다. 그림 위주의 짧은 문장들이 많아서 가뿐하게 읽어줄 수 있었고 이어서 돌아가며 자기 기분을 말하는 아침 시간을 가졌다. “졸려요,” “모르겠어요.”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럴 수 있다고 모두 받아주었다. 나도 은근슬쩍 기분을 보태었다. 선전포고는 아니었지만 오늘 내 기분과 상태가 좋지 않음을 털어놓고 싶었달까. 그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몸이 가벼워지는 듯했는데 아이들도 조금 그랬으면 했다.
그렇게 아침 그림책 시간이 끝나고 나면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그 책을 마음에 들어 한 정도가 표면 위로 드러난다. 아이들 수준과 상황에 딱 맞는 재밌는 책이면 쉬는 시간 서로 먼저 보겠다고 순서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잠잠하다. 잠잠하면 괜히 섭섭할 때도 있었지만 그 반응 정도의 차이를 관찰하는 것도 이제는 재미있다. 정작 읽어줄 때는 별 반응 없었다가 대여율이 아주 높은 책들도 있다. 때로는 읽어준 지가 일주일, 이주일이 넘게 지나도 한 번씩 그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렇게 그림책 한 권이 아이들 마음속에 남는다. 그러면 나도 내심 뿌듯하다.
금요일이 되면 아이들과 ‘이번 주의 그림책’을 뽑는다. 읽어준 모든 책을 계속 칠판 앞에 세워둘 수 없기에 이번 주에 읽어준 5~6권의 그림책 중에서 1권만 뽑아서 남긴다. 나머지 책들은 모두 학급문고 또는 도서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1주 차, 2주 차, 3주차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들만 추려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우리 반이 이런 책을 좋아하는구나 싶다. 아마 아이들도 내가 읽어주는 책들을 보며 ‘선생님이 이런 책 좋아하는구나’ 할거다. 이렇게 그림책으로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우리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