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도와주세요"

무심한 한마디가 남긴 긴 여운

by 유랑행성

“저 좀 도와주세요.”


맥락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던져진 그 한마디는 의외로 따뜻하고 친근하게 들렸다. 순간, 그 말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누군가가 심리적인 계산 없이 불쑥 다가오는 순간, ‘내가 그런 신뢰와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가능성만으로도 감사해졌다.


그녀는 주변에서 까칠하고 고집 센 사람으로 자주 평가받는다.
나는 천성적으로 방어막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둘이 만나 업무 속에서 의외로 친근한 관계를 형성했고, 신뢰도 쌓아갔다. 그래서 그녀가 건넨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단단히 세워져 있던 벽을 허무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녀와 나는 전형적인 ‘갑을 관계’다.

처음엔 기본적인 친근함이라도 만들기 위해 애써 미팅을 잡고, 점심을 함께했다.
그건 업무의 연장선, 일종의 숙제 같은 일이었다. 사소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늘 선을 지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횟수가 쌓이면서 익숙함이 생겼고, 익숙함은 어느새 친숙함이 되었다. 이제는 꼭 업무가 아니어도, 아침 커피 한 잔을 핑계로 찾아가 몇십 분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직접 “도와줘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요청을 하더라도 굳이 ‘도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건넨 “저 좀 도와주세요”는 내겐 충격이자 울림이었다.


결국 같은 말이라도 속살을 드러내듯 단순하게 다가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부탁하는지가 아니라 ‘당신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는 신뢰가 담겼기에 그 말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몇 주가 지나도 여전히 곱씹으며 혼자 왠지 모를 친근함으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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