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스타벅스

이것도 취향인 걸까

by 유랑행성

이제는 너무 흔해서 특별할 것도 없고, 맛이나 가격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지만 어딘가 편히 앉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늘 스타벅스(Starbucks)다. 첫 매장이 문을 열던 시절처럼 '새롭고 세련된' 느낌이거나 특유의 스타벅스 문화에 동경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의 가장 친근한 공간이 된 이유는 뭘까?



다양한 가격대, 사이즈의 음료

자주 찾기 위해서는 가격을 무시할 수 없겠지.

내가 가장 만만하게 주문하는 건 '오늘의 커피' 스몰사이즈다. 카페인을 줄이려 하면서도 커피를 완전히 끊지는 못한 내게, 이 작은 잔이 딱이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며 당이 포함되지 않은 음료를 고를 때 딱히 미감이 뛰어나지 않은 난 고압으로 빠르게 추출해 낸 아메리카노와 커피를 내려 만든(brewed) '오늘의 커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오늘의 커피'가 선택되는 거지.


가끔 배가 고프거나 쿠폰이 생긴다면 나의 픽은 말차라떼(Matcha Latte)에 당을 모두 빼고 두유로 바꾼 버전이다. 시럽의 양을 '0'으로 만들 수 있는 옵션이 있고, 두유나 오트밀로 바꿔 유당의 섭취도 막을 수 있으니 칼로리가 있지만 가장 건강한 메뉴인셈이다.



알람과 기계음이 들리지 않는 공간

모르고 있었는데, 수시로 '딩동', '○○번 고객님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가 울려대는 카페를 가고 나서야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내 별명을 부르는 직원의 외침이 고마워졌다.

대형공간의 스타벅스에서도 전자 알림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열심히 별명을 부르는 방식이 조금은 비효율적이고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난 카페 안에서 들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단 한 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카페를 찾는 이유는 휴식과 편안함을 위해서인데, 그 공간에서조차 장사의 소음을 듣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목소리가 있는 공간이 결국 더 따뜻한 공간이다.



다양한 좌석과 위치변경이 가능한 테이블과 의자

일자로 붙은 소파석을 제외하면 대부분 의자와 테이블은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옮겨질 수 있다. 이 또한 테이블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카페에 가 보고서야 느꼈던 차별점인 것 같다.

테이블을 바짝 당겨 앉을 수도 있고, 살짝 각도를 틀거나 혼자서도, 함께여도 내 자리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공간의 소중함.


테이블을 옮기지 못하도록 고정한 건 매장의 배치구성이 흩트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겠지. 그만큼 자주 돌아다니며 테이블 위치를 조정하고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주 사소하지만 공급자 중심의 의도와 편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 그런 공간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



대형매장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딱히 사회적인 기업도 아니고, 신선한 원두를 공급하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는 괘씸한 곳이지만 '그래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예측가능한 서비스와 대형매장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동네커피집에 마음은 가지만 대체로 너무 작아 공간을 마음껏 누리기엔 미안하고 불편하다.

그럴 때 스타벅스는 내게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어 준다.



나는 take-out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소한 2,000원은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 take-out 하는 게 전혀 저렴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내가 커피값을 지불하는 건 음료 자체가 아니라 그 커피를 마시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도 매장의 배치나 분위기, 사소한 거라도 고객을 배려한 동선과 가구 등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특히 혼자 카페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는 나에게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라기 보단 또 다른 나의 방, 나의 공간의 의미인 것 같다.


작지만 내가 뭘 중요하게 판단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알게 되면서 돈을 지불하는 일이 단순한 소비에서 나의 취향을 구매하는 행동으로 느껴지는 게 즐겁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