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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Jan 14. 2021

반갑지 않은 출생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데 누구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는 3살 위인 오빠와 1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있는 막내이다. 부친은 오빠와 언니로도 충분해서, 나의 탄생이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난 원치 않는, 실수로 태어난 아이구나, 누구도 날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과연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되지도 않은 바보 같은 생각을 무의식 깊이 품고 자랐다. 내 이름을 출생 한참 후에 지었다고 하니, 미천함이 나의 존재였다.


부친은 ‘신앙촌’이라는 이단종교에 빠졌다. 급기야 재산을 바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몰고 갔다. 그 때문에 유년시절 빈곤을 경험했다. 친구가 우리 집이 가난한 것을 알게 될까 두려워 거짓말로 포장한 적이 많았다. 교우와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고 싶었지만, 궁핍한 나에게 실망할까 친해지기도 전 늘 전학 가고 싶어 했다.


청소년 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다. 서글프고 무서웠지만,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일부러 도도하게, ‘너희를 무시해.’ 가장하여 거리를 두었다. 그들과 고립되어 지내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거야’ 혼자 다짐하곤 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새침하고 밉상으로 보였다. 어른이 될 때까지 딱히 친한 친구가 없었다. 이런 영향에서인지,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를 만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연인이 되면서 남자 친구에게 거는 기대가 비교적 컸다.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애정결핍이 이유였을까?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남자 친구는 나쁜 남자로 만드는 패턴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가정형편은 나아지는 듯했지만, 잦은 불화로 나는 하루빨리 친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불행과 함께 타이밍이 왔다. 안타깝게도 부친은 뇌종양 투병 중이셨는데 끝내 유명을 달리하셨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누구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무용과 진학에 실패하였고, 유학 중이던 오빠와 언니를 따라 나 역시 미국에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미국이 아닌 스페인으로 바꿨을 뿐 나의 행로에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정황으로 오히려 일찍 혼인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도피성 유학이었지만 정열적인 스페인 춤 플라멩코를 한국인으로서 드물게 배운다는 미션을 가졌다. 결혼에 낭만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도박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어렸을 때 열등감을 겪는다. 그때 경험한 일로 세상을 마주하며 필터를 갖는다. 저마다의 관점으로 자신과 외부세계를 이해하며 세상을 만들어 간다. 스스로 이룬 세상이  왜곡된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방어하고, 과거의 일을 다루고, 미래를 염려한다. 지속적인 배움과 험으로 정체성을 강화한다. 정체성을 확립하면 할수록 성공을 향해 가기도 하지만, 곡예하듯 인생은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감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5살 즈음, 부친이 언니만 불러내 친구분께 자랑을 하셨다. 시기심에 나는 언니의 땋은 머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부친은 여러 사람이 다 쳐다보는데 역정을 내셨다.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해하시는 부친의 눈빛을 지금도 떨쳐 낼 수가 없다. 언니만 예뻐하는 부친이 미웠고, 아무도 없으면  사정없이 나를 꼬집을 게 뻔한데도 괜찮다고 말하언니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배신감과 억울함에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그때 겪은 감정은 무엇보다 극도의 수치심, 치욕이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난 망했어!’라고 결정지었다. 그때의 모멸감못나고 불충분하다는 자각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치하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이다. 내가 가진 것을 시시하다 업신여겼다. 평생을 평범에 부끄러워하며 살아온 것이다. 더구나 보잘것없는 나를 감추려고 언제나 멋있는 척하며 말이다.


내가 날 인정하지 않는 데, 남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데 누구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아무리 날 사랑한 들, 자기 의심으로 가득 찬 내가 순수한 사랑을 알아차릴 수나 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것은 기적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던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고 상대 또한 같은 감정과 기분을 느낀다는 것, 즉 화학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게,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은 것 같다.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 기적이라서 그런 걸까?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어쩜 그렇게 구구절절 마음 깊숙이 꽂히는 걸까?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그와 잘 지내고 싶었다. 성격이 맞든 안 맞든, 기대에 좌절하든 극복하든, 비탄에 잠기든 어나든… 반복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를 들여다보았다. 속상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추스렀다. 그의 입장에서 바른 선택을 하려 했다.


“무엇이 서로를 위한 것일까? 관계에서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그때의 나는 연락을 주고받는 것에 민감했다. 그와 소통하고 싶어 안달했다. 그래 봤자 달라진 건 없었다. 나를 봐달라는 잦은 표현을 자제해보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간절함에 상념으로 뒤척인 밤. 나는 느긋한 마음을 가진 줄 알았다. 하지만 얼룩진 필터를 닦아내느라 절절 맨 것이었다. 좀 더 정직하게 나의 기분과 감정을 살펴보았다면 어땠을까. 진정 원하는 바를 탐색하려는 용기만 있었다면… 보다 문제의 핵심에 접근했을 텐데.


그에게 사랑받고자 괜찮은 척한 표현은 오히려 나의 결핍을 감추게 만들었다. 자존심 상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속이며 그의 탓으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사랑과 존중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진정하지 않음으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의 편에서 생각한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를 위한 척을 하고 있었던 나. 진흙으로 만든 콘에 초콜릿으로 덮인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지 못해 발만 동동 굴리는,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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