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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Jan 10. 2021

안드로메다 은하

베란다에 서서 하늘을 봤다. 잡을 수 없는 게 어디 흘러가는 구름뿐이랴... 그저 핑크빛에 감탄할 수밖에...


환희의 순간도, 벅찬 깨달음도, 구름처럼 가벼운 마음도 결국 소용이 없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곤두박질치며 무너지는 건 왜일까? 온종일 그와 아무런 소통이 없을 때면 힘은 없고 나만의 드라마를 썼다. 그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마냥 외롭고 처량하기만 했다.


만나기로 한 약속이 변경될 때, 전화로 미안하다고 얘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너그럽게 다 받아줄 텐데. 문자로 통보받을 때면 진짜 버려진 것만 같다. 더구나 우리 둘만을 위한 영상이나 셀카 동영상을 보냈을 때, 몇 시간째 확인하지 않고 답이 없으면 난 심히 좌절하곤 한다.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우리의 데이트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보냈다. 함께 경험한 행복을 다시 떠올리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라고나 할까? 고스란히 그도 느끼길 바라며, 얼마나 들뜬 마음으로 보내는가. 


하루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입을 섹시한 속옷을 그에게 골라달라고 하였다. 여러 개를 번갈아 입고 모델포즈를 취하면서 동시에 쑥스러워하는 셀카 동영상을 보낸 거였다. 15시간이나 답이 없었다. 나는 마치 추운 길거리에 속옷을 입은 채 15시간째 벌서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처참한 기분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너덜너덜 찢긴 자존심과 상한 심정을 어찌할 줄 몰랐다. 다시는, 절대로 동영상을 보내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 밤 집은 분명 따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다. 자는 둥 마는 둥, 그럼에도 밤새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다 예쁘고 마음에 든다며 뭘 고를지 모르겠다고 답이 왔다. 하지만 늦었다! 나의 마음은 안드로메다 은하로 이백만 광년만큼이나 멀어졌다. 밤늦게 토론회 마친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잤다고? 미안하다는 말도 위로가 되기엔 역부족인데?


전에도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바빠서 동영상을 볼 수 없다면 ‘있다 확인할 게.’ 혹은 간단한 이모티콘이라도 보내달라고까지 부탁했다. 뭐라도 연락이 올 때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궁금해하는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까? 바쁘거나 아직 못 봤다는 무미건조한 말을 들려줄 뿐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어떤 중요한 미팅에도 나는 그의 연락에 수시로 확인하고 바로 답을 보내는데 말이다.


혼신을 다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머리가 새하얗다 해도, 화장실에 안 가나? 밥도 먹을 테고, 캐주얼한 뒤풀이도 있었다 했지? 사이사이에 분명 시간은 있을 텐데. 무반응의 반응, 무시인 걸까, 무관심인 걸까? 


마음속 전쟁을 끝내려면 아무래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건 사랑이 아니야!’ 바로 소통하지 않는 그를 답답해했다. 행동방식 이전 그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배려와 이해는커녕 내 주장만으로 무장되어 있는 ‘여 전사’와 같았다. 뜨거운 화병을 쥐고 괴로워하면서 내려놓지 못한, 우둔하고 안타까운 ‘여인네’였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스스로 고통받고 있던 걸까?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쓰고 지우고 반복한 걸까?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한 걸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영상이나 문자를 보냈고 내가 원하는 호응을 그에게 기대했다. 그는 늦게 확인하거나, 답을 보내지 않았다. 이뿐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그날, 문득 그가 그리웠다. 바쁜 정황을 알기에 그의 관심을 문자로나마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이른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책무에 헌신하고 있었다. 짧지만 한 순간이라도 오직 한 사람 나한테로 돌리고 싶었던 기대, 아니 욕심은 결코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반응에 전전긍긍하면서 징징거리는 내가 드러났다. 그가 아닌 나에게 허망함을 느꼈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나의 사고방식, 방어기제는 그를 나쁜 남자로 만들었다. 우울한 기분, 집착, 체념, 그의 탓으로 돌렸던 합리적인 이유, 결국 사랑하는 그와의 관계를 망쳐버렸다. 나의 소중한 삶까지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뜨거워, 괴로워하는 날 좀 바라봐, 이렇게 뜨겁다고!”


내려놓으면 되는 그뿐인 화병을 굳이 들고 있으면서 대체 뭘 얻고자 했던 걸까?


“당신은 무심해!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렇게 원망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을까? 그만 질려 저 멀리, 그 또한 안드로메다 은하로 달아나고 싶을 것이다.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이, 사랑을 함께 경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받고 싶은 사랑을 그를 통해 경험하고 싶은 것인가? 이게 내가 원하는 사랑인가? 아님, 고약한 에고 인가?


연락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더 급하고 중요한 상황으로 나의 요구를 미룰 수 있다. 어쩌면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살펴보고 싶을 수도…


완전히 단절된 것만 같아 숨 막히게 슬프고 외로웠는데… 차분히 그와 나를 들여다보니, 우리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그와 연결을 느꼈다. 힘이 생겼고, 분노와 섭섭함은 사라지면서 그 안에 비로소 자유가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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