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해 시간을 붙들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봐야 하는 건지.
나는 세 가지 ‘책, 강연, 사람’에서 자극을 받는다. 특히 세미나 참석 이후 변화가 시작됐고, 소중한 나의 삶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취미로 시작한 유튜브에 공들여 시간을 보냈다. ‘이지원(옛 가명)의 판도라 쇼’. ‘판교에 사는 도시풍의 라이프스타일 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네이밈이다. 유행에 편승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유투버를 시도한 거였다. 셀럽도 아니고 딱히 성공한 삶도 아니지만,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일상-보고자 하는 이는 없어도 보이고 싶은- 을 담아 만든 브이로그형 유튜브였다. 일기 쓰기처럼, 글이 아닌 동영상에 차곡차곡 쌓는 행위가 누군가에 호기심 혹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여겼다.
참,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는지... 몰라서 용감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아들 셋을 당당하게 키우는 싱글맘의 일상을 콘셉트로 잡았다. 여기에 감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더한다면 어떨까? 잠시 잃었던 감각이 살아난 듯, 열정도 솟아났다. 아무튼 ‘판도라 쇼’ 탄생은 이러했다.
나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 몇 명이 구독하는, 유투버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궁색한 채널이다. 어찌 됐던 바쁜 그와 늘 함께 할 수는 없었다. 나 혼자 지내는 법에 익숙해야 했기에 꾸준히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랑을 위해 시간을 붙들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봐야 하는 건지. 연애 중인지 아닌 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애매모호한 잡히지 않는 공기덩어리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 뜻밖의 데이트를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는 한참의 시간을 두고 기대를 포기할 때쯤 이벤트를 선물했다- 대학로에서 ‘김종욱 찾기’ 뮤지컬을 본 것이다.
소극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매력, 일인 다역. 같은 배우가 다른 배역을 맡은 것을 뻔히 알아서일까? 알고도 모르는 척,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는 설정이 더 맛깔스러웠다. 바뀐 배역으로 무대 위에 등장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코믹하다니. 소극장 연극의 묘미는 두 명콤비의 환상적인 조화라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커튼콜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뻔뻔한 연기에 얼마나 배꼽을 잡았던지. 점잖게 미소만 머금고, 감정 표현이 조심스러운 그도 웃기면 별 수없이 크게 웃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전에도 로맨스 코미디 뮤지컬을 보며 즐거워했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진한 감동을 느낀 건, 아무래도 이번 뮤지컬의 주제가 ‘운명(Destiny)’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스토리, 탁월한 연기, 테마 등 모든 요소가 훌륭했다. 연애 중인 게 맞나? 의심한 온갖 불평이 전부 다 사라지고도 남았다.
운명처럼 제 짝을 만났다고 믿은 걸까? 택시를 타고 그의 아파트로 가는 내내 서로 말이 없었다. 그저 마음 한 가득 터질 듯한 충만함으로 뮤지컬의 여운만을 되뇌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나는 행복을 안고 가는 신부와도 같았다. 그의 오른팔은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그의 왼손은 수줍게 포갠 나의 손을 계속 어루만졌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애틋한 애무와는 사뭇 다른, 서로 덮치는 유희에 깊이 빠져들었다. 황홀경은 밤새 지속될 모양이었다.
전율이 요동치는 순간, 희열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폭죽이 아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다부진 어깨에 내 입을 틀어막았다. 온몸을 휘감고 몰아치는 강렬한 오르가슴은 천장 가득 불꽃놀이를 수놓았다. 그때 무언가가 쏟아져 흘렀다. 따뜻하고 말간 액체, 사랑의 결정체였다.
흥건히 젖은 침대 시트 위에 소진되어 축 늘어져있는 나를 그는 다정하게 안아 옆으로 옮겼다. 나의 젖은 눈과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해주더니 두툼한 목욕타월로 나를 감싸 안아 욕실까지 데려다주었다. 격한 감격에서 아직 비틀거리는 나를 뒤로하고 그는 침대 시트를 갈았다. 낑낑대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불꽃, 마그마처럼 분출했던 절정의 체액, 어지럽게 작열한 그날 밤의 경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리. 보드랍고 보송한 침대 위에 그의 품에 안겨, 웨딩마치를 걷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 좋은 타이밍은 아니다 여겼지요.
이렇게라도 만날 지는 정말 몰랐죠.
무더운 팔월을 지나
붉게 물든 단풍을 진하게 보기도 했으니.
좋은 시절 좋은 날에
우린 함께 마주했죠.
행복과 감사함으로 가득 찬 나날이 더해가고 있죠.
우리의 관계를 위해 놓치는 것이 무얼까?
돌아보는 섬세함에 얼마나 든든한지요.
어느 날 각자의 삶에 갑자기 등장한 그대와 나
뜨거웠던 어젯밤의 눈물이 그냥 흘러내린 건 아니겠지요?
Destiny... 뮤지컬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위해
적절한 타이밍을 마치 당신이 창조한 게 아니었나…
오늘도 사랑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뮤지컬을 본 그 날을 떠올리곤 한다. 찬란한 절정을 맛본 날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와의 재혼을 처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가 그는 결혼 얘기를 꺼내면서 세 가지가 맞았음 한다고 했다.
첫째, 함께 있을 때 좋을 것.
둘째, 서로의 요청이 수용될 것.
셋째,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일 것.
그와 무엇을 하든 함께 있으면 무조건 좋았다. 뭐가 됐던 같이 경험하는 것이 신나고 행복했다. 사랑한다면 어떤 요청이라도 들어줄 것만 같은데, 아닐 수도 있나? 수용할 수 없는 요청이란 게 무엇일까? 수위를 넘는 요청은 하면 안 되는 거고.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힘이 되는 관계란 무엇을 말하는 거였을까? 능력을 말하는 걸까, 용기를 갖게 하고 벽처럼 단단하게 견지하는? 신뢰하며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든든한 동반자?
그가 말한 세 가지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뜻을 품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거란 걸 그때는 몰랐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태세였으니까. 행여나 싸운다는 것,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마음이 같지 않다면, 다른 기억으로 쌓인다는 것을.
거듭 생각해보지만, 정말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사랑을 키워온 게 아니었을까? 그의 세상에는 내가 아닌 그가 생각하는 다른 내가 있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