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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07. 2016

너희는 너희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좋은 나


***


“니체가 말하는 ‘강함’은 가치의 창조와 관련이 있다. 강자는 가치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그것에 따라 사물과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귀족의 판단 양식과 노예의 판단 양식 사이에서 눈여겨볼 점은 가치 판단이 어디서 시작되는가이다. 귀족들이 자신들로부터 시작한다면 노예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1991)이란 동양이 서양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익숙한 태도이다. 유럽인의 머릿속에서 조작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다. 동양을 재구성하여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며, 결국 그것은 제국주의 식민지 건설에 봉사한다.


니체의 ‘노예’와 『오리엔탈리즘』의 ‘동양’과 다르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생겨난 ‘나’는 ‘나는 없는 이상한 나’였다. ‘아내’였고 ‘엄마’였고 ‘며느리’였고 오만가지 호칭이었다. 잘하려고 최선을 다할수록 헷갈렸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긴 알았다. 나에게 좋은 건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안 좋은 거였고, 그들에게 좋은 건 나에게 나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결혼한 여자’들이 죄다 그렇게 사는 거였다.


***


“왜 인간은 좋은 것을 받고도 그것이 좋은 것임을 알지 못할까? 그들은 과연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그것을 판단하는 자는 누구일까? 혹시 그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목자를 따라다니는 가축떼가 아닐까?”


***


나의 가치.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좋은 엄마’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생명에 대한 예의였다. 그 아이는 내가 세상 전부니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수유하고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동물 같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좋은 엄마가 뭐지?’하고 되뇌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내 엄마’밖에 없는데, 그때의 내 엄마는 내게 자꾸만 아들을 낳으라고 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다섯이나 낳은 내 엄마. 나는 또 이상했다. 딸이 왜? 뭘 잘못했나? 그건 또 뭐지?


***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판단의 포기’다. 판단하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복종하는 데 익숙해진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도 기쁘게 원한다.”


***


니체 씨!

‘좋은 엄마가 뭐지?’라는 질문에 내가 찾은 답은 ‘좋은 나’였어.

‘좋은 나’가 되고 싶어서 나랑 친해졌어.

알아야 하잖아. 뭘 좋아하는지.


그때 그대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어.

이미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내게 훅 왔다니까.

가치의 전환, 그래. 그동안 내가 숨 쉬고 있던 공기 때문에 힘겹게 휘청거렸더라고.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렸지.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을까?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무척 어려운 질문이었어.

나는 아팠고, 그건 좋은 핑계였고, 그리곤 숨어버렸지.


이리저리 피하고 숨고 도망 다녔어.

그냥 ‘엄마’로 ‘아내’로 살아보려고도 했어.

그런데 있잖아, 그건 안 되는 거였더라.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어.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니체 씨! 우리 사귀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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