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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08. 2016

사랑을 가르친다, 벗을 가르친다

사랑과 우정 사이

***


“니체는 사랑이라는 말과 소유욕이라는 말이 느낌은 아주 다를지라도 동일한 충동의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자를 독점하고자 하는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지식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도 새로운 소유욕의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사랑 너머에, 사랑을 지속하면서 그 열망을 공유하는 우정.

우정은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사랑이다. 하지만 그 선물은 기쁨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선사함으로써 기쁘고, 받아서도 기쁜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연민과 동정심에서 나오는 것은 선물이 아니다."


***


니체 씨!

내 결혼 얘기해줄까?


남편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그때부터 연애한 건 아니고, 그냥 본. 거.

그야말로 순수의 시대였지.

내 꿈이 ‘현모양처’였거든.


결혼한 여자는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월간지에서 ‘남편 사랑받는 방법’ 따위를 읽으면서 누군지도 모를 ‘남편’이란 남자를 그리며 어디에 있느냐고 찾았지.

누구든 나타나기만 하면 제대로 사랑하겠다고 벼르면서 꿈꿨어.


퇴근하는 남편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정성스레 준비한 맛있는 저녁을 함께하고 식사가 끝나면 핑크빛 무드로 바뀌면서 사랑의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싱그러운 촉촉한 얼굴로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출근하는 남편과 가벼운 키스를 나누며 빨리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라.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는 얘기를 먼저 꺼냈어.

연애가 뭔지도 몰랐고,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고 알았나 봐.

연애 따로 결혼 따로 그건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랬더니 ‘결혼’ 얘기에 남자들이 다 도망가더라고.


남편과는 그냥 친구였어.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한 뒤로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정말 편한 친구, 딱 그거였어.

소개팅 한 남자 얘기며, 차인 얘기, 만났다 헤어진 남자 그립단 얘기, 내 결혼식에 꼭 와야 해, 넌 좋은 친구야, 내가 결혼해도 볼 수 있을까, 살이 너무 쪘어, 밥이 왜 이렇게 맛있니, 술이 떡이 돼서 필름이 끊겼어, 해장하다가 또 취했어, 뭐 이런저런 20대 초반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동성 친구보다 더 자연스럽게 자주 편지로 주고받았거든.


지나고 나니까 그게 연애였더라.

남편이 군 복무하는 동안이면 난 결혼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제대하고 복학해서 다시 만나고 있었어.

그때부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엄청 고민했지.

그러다 덜컥 믿어버린 거야.

우리가 결혼하면 ‘친구 같은 부부’가 될 거라고 말이야.


***


“돌을 사랑하는 조각가가 망치를 들고 가 그 속에 숨은 위대한 형상을 끄집어내듯, 세계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위대한 형상을 끄집어낼 선물을 들고 가야 한다. 친구가 된다는 건 진리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


니체 씨! 우리 사귀는 거 맞니?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친구를 ‘창조’ 해야 한다고?

그럼, 우리 친구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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