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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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인간을 넘어섬’, 혹은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숨 쉬고 있는 생물학적 존재인 사람들의 사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많은 규정이 있다. 그런 규정들은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다시 말해서 우리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들이다. 위버멘쉬란 이런 규정들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위버멘쉬란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체성 자체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을 유일한 정체성으로 갖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란 개별적 정체성을 가져야 하지만 위버멘쉬에겐 그런 정체성이 없다. 굳이 정체성을 말한다면 ‘정체성을 극복하는 것만을 정체성으로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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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씨!
여기가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이야.
위버멘쉬, 진짜 멋져.
내 식으로 해석해볼게.
나는 언제 처음 ‘여자’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누가 날 처음으로 ‘여자’라고 불렀을까?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아들을 낳기 위해서 딸을 다섯이나 낳아야 했던 엄마의 맏딸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였을까?
아빠가 원하는 착하고 귀여운, 얌전하고 소심하고 말 잘 듣고 예의 바르고 인내심 많고 순종적인 ‘딸’이 언제부터 ‘여자’가 되기 시작했을까?
내가 기억하는 건, 결혼하고 남편에게 들은 말이었어.
“어디 여자가!” 그 한마디에 나는 주눅이 들어서 쪼그라지곤 했어.
그러다가 되묻게 되었지.
“여자가 뭐? 뭐가 어쨌다는 거야?”라고.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여자다움’에 길들어서, 자기 자신이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상으로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복종하며 익혀왔던 것 같아.
엄마, 아내, 며느리, 직장인에다 주부까지 서로 상충하는 역할들을 완벽히 소화하려고 애쓰면서 말이야.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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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과일들만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모든 익은 것들은 집착을 버리고 떨어진다. 그것이 더 많은 생명들의 탄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무수히 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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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민이나 집착도 없는 말 그대로의 ‘떠남’, 그것이 위버멘쉬로의 변신이라고 했지?
나를 ‘여자’이게 하는 많은 규정이 있어.
나, 그런 규정들로부터 떠나고 싶어.
‘여자’를 넘어서서 살아보고 싶어.
부모로부터는 벗어났을까?
남편으로부터는?
아이들로부터는?
‘여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나로부터는?
모두 ‘또 다른 나’일까?
‘정체성을 극복하는 것만을 정체성으로 갖는다’는 이 모순을 끌어안고 싶어.
‘여자’인 것을 ‘넘어서기’, 혹은 ‘여자인 것’으로부터 ‘변신하기’
그렇게 나를 극복하고 싶어.
니체 씨!
자신을 긍정해 줄 긍정이 필요하다고?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좀 도와줄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