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별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버킷리스트. 내가 생각하는 금전적 자유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내가 한 달에 버는 수익이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그것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기. 하지만 지금은 조금 곤란해졌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나비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신경 써야 하기에.
노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고작 그런 이유였다. 나비 밥값 벌어야지. 단순하고 하찮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한 동기 부여. 나는 늘 생각한다. 나비가 나와 같아지지 않았으면 하고. 아프지 않고 좋은 것들만 먹고, 보고 누리며 나쁜 생각 속에 혼자 버려지지 않기를. 누군가는 이 작은 미물이 그런 걸 알겠냐고 나를 한심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마저도 나비를 그렇게 여긴다면 나비의 행복은 과연 누가 챙겨주는 걸까. 나는 애옹이로부터 배고프지 않은 하루를 지키는 것도 많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들과 산, 마을과 도시를 떠도는 고양들에게서도 그것을 배운다. 나는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이 작은 일상이 깨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비의 평온한 일상은 곧 나의 평온함과 직결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내가 사회로 다시 돌아가게 만든 것은 나비였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실업급여를 신청해 수급하고 있었기에 몇 달간은 경제적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월세 같은 것도 나가지 않고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도 내지 않는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서 가끔 가족들을 위해 장을 보고 자주 먹지 않는 간식을 대령하는 것 정도로 이 집에서의 내 소소한 입지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노동을 하게 되면 이제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생활비 명목으로 엄마에게 일부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집을 짓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남자 친구를 도와주어야 하며 나비를 책임져야 한다.
가을 일광욕 중
10월 초, 친하게 지내던 언니의 집들이 겸 나와 남자 친구는 아주 오랜만에 상봉을 하게 되었고 그때 우리는 올해를 마무리할 계획을 완성했다. 아무래도 떨어져서 살면 서로 오가며 쓰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더불어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는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니 계획을 확실하게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남자 친구는 하던 일을 12월 말까지 정리하고 해남으로 내려올 것. 우리의 결혼식은 내후년 4월을 예정으로 준비할 것.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마침 우사의 보수 공사가 12월에 예정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보수 공사의 책임자인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집을 짓기 전까지 머무를 조립식 건물을 하나 세울 예정이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고 이전에 기록한 바와 같이 이미 식구들이 집을 알뜰하게 쓰고 있었기에 남자 친구가 해남으로 내려오게 되면 지낼 곳이 없기에. 외삼촌의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현장 답사도 하고 견적도 냈으며 우리는 공사 시기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정까지 대충 맞춰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아빠는 느닷없이 괜찮은 이동식 주택이 중고로 나왔다며 사진을 찍어 내게 가져다주었다. 약 11평 정도가 되는 괜찮은 매물이었다. 남자 친구와 나는 그 매물이 제법 마음에 들어 예정보다 빨라진 시기에 목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도 이때까진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아빠가 다음 날 해당 매물을 뜬금없이 계약을 해버리면서 시작된다. 우리 집은 마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주변엔 민가가 없고 저수지를 향해 20분 이상 걸어가면 민가가 한 채 더 있다. 컨테이너는 완성이 되어있는 건물이라 길이가 대략 11m, 폭이 4m 정도가 되는 녀석이기 때문에 그걸 실어 나를 트럭과 크레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보수가 뜸한 시골 마을의 전선은 낮게 지나가고 있었고 집과 집 사이의 간격도 넓지 않다. 그러다 보니 최근 마을의 농지로 향하는 도로의 다리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 공사가 끝나 다리를 사용하기 전까지 컨테이너가 마을로 진입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다리는 빨라야 12월 완공 예정이다.
그렇다면 따져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그 컨테이너를 당장 이동해오지 않아도 괜찮은지와 만약 이동을 해야 한다면 트럭과 크레인이 마을을 지나올 수 있을지. 아빠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는 형님이 트럭과 크레인 관련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트럭과 크레인 기사가 마을을 한 번 방문해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잠시 또 소란해졌다. 만약 바로 컨테이너를 옮겨와야 한다면 비용도 당장 나가야 한다. 게다가 컨테이너를 앉힐 곳의 지반도 다져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밤새도록 고민한 남자 친구와 나는 묶여있는 돈을 어떻게든 융통해 비용을 최대한 마련하고 당장에 깨면 손해인 적금들이 있어 부족한 비용은 부모님들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사다난했지만 비용의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음 날 터졌다. 컨테이너를 팔기로 한 실소유주가 너무 저렴한 비용에 거래를 했다며 계약 파기를 요청한 것.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아빠와 계약을 한 것은 그 컨테이너를 만들어준 업체의 사장이었던 것. 계약금도 들어가고 약식 계약서까지 쓴 마당에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아빠는 해당 거래자에게 우리는 비용을 당장 지불할 테니 매물을 가지고 오겠다며 내일 중에 답을 달라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사이에 실소유주가 그 매물을 자신이 살던 동네 이장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이전 계약자와의 계약이 파기도 되기 전이었다. 그 다음날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당장에 경찰서에 가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거래를 했던 업체의 사장은 아빠에게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하고 위약금, 그리고 동일한 디자인의 새 컨테이너 제작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몹시 언짢아졌다.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에 사기가 아닌가?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거니 내가 직접 따져 묻겠다며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시작한 일을 내가 중간에 이렇게 끼어들게 되면 아빠의 기분도 썩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사흘 정도를 그 컨테이너 때문에 두통을 앓았다. 그래도 아빠는 그 일을 잘 마무리했다. 우리가 보았던 중고 매물보다는 작은 평수지만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평수의 새 컨테이너를 제작해 받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2주 뒤면 그 컨테이너가 내려오기 위한 공사가 시작이 된다.
기부니가 좋은 나비
나와 남자 친구는 읍내에 집을 얻는 것도 고려했으나 식비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 빠르게 집을 짓는 편이 좋겠다는 점에서 생각이 일치했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만 있는 컨테이너를 들여 식비도 생활비도 최대한 아껴보려는 목적이었다. 생활비, 우사의 사료 값을 조금 보태는 대신 밥과 세탁기는 집의 것을 사용하고 우리는 컨테이너에서 잠만 자려는 것이다. 게다가 나비와의 동거를 반대하는 아빠로부터 나비도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사람은 살면서 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컨테이너를 앉히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는 날, 나는 첫 출근을 한다. 내 직장은 해남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종합 병원이다. 병원 근무의 특성상 당직도 있고 토요일 근무도 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나비가 너무 오랜 시간 집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쓰는 방을 그대로 두고 출근하면서 나비만 집에 맡기는 것을 생각 중이다. 남동생이 나비와 시간을 보내줄 것이고 할머니와 엄마도 나비를 챙겨줄 것이니 혼자 있는 생활보단 나을 것이다. 어차피 집도 고작 몇 걸음 앞이고. 하지만 나비의 살림도 두 배로 필요하다. 화장실, 캣타워, 장난감들을 매번 이동할 수는 없으니 이런 것들이 모두 두 개가 되어야 한다. 후. 역시 나는 일을 해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아빠가 나비를 내보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비에 대해 내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빠에게 다가가 장난을 걸고 몸을 부비는 나비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거나 하게 되었다. 이 다음 기록은 내가 왜 좋은 아빠가 아닌 아빠를 그래도 사랑하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