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밑은 맑을 줄 몰라서
공은 찬 사람이 주워오라는 말 있잖아요. 언뜻 이별에 대한 결단을 내린 말 같은데, 곱씹어보니 조금 위태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였을까요? 저는 결국 문장 안의 주체가 나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공을 차버린 쪽도, 다시 주워와 경기를 재개해야 하는 쪽도 내가 아니라 너라서요. 그 XX가 공을 차긴 찼고, 주워오라고 호통은 쳤는데요. 주워서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면 사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경기장은 맞았을까요? 나는 관중을 자처하고 있었을까요?
차여서 쓰는 글은 아닙니다(ㅋㅋ). 내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인 것 같다는 너무도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의 불안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하물며 강아지도 사실 제 기분의 상태를 눈치채는데, 사람이라고 못할까요? 내 불안을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이해를 전가시키는 일에,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떳떳하게 달수 있을지 자꾸만 의문이 듭니다. 이런 주제는 늘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언제나 시원한 해결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밌기도 합니다.
네가 있어야만 돼 보다는 너나 나나 서로가 필요할 것 같은데?라고 말해본 적 있었거든요. 너무 도발했나 후회하다가 역시 이게 맞지, 해버렸어요. 결국 이 말은 네게 건넨 게 아니라 내게 쥐어준 말이었습니다. 필요한 걸 주었으니 이제 꽉 쥐고 있는 연습을 할 차례입니다.
마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강인하게 공을 그러쥐고 있는 투수가 된 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내가 목표하는 곳으로만 마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야구 보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수 있는 말이죠. 네모 안에 공을 좀 넣으라고요(ㅎㅎ) 그렇지만 이 경기장에서는 예측하지 못하게 뻥 날려버릴 일이 없어 공을 주워올 볼보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야구보다는 캐치볼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의 왼손에 끼운 글러브로 계속 마음을 던져 넣는 일을 합니다.
이 경기가 이제야 2회 초일지 혹은 9회 말일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마음이 제대로 시작을 하려는 선발투수일지,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러 온 구원투수일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불안에 떨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워요!(ㅋㅋ) 지금의 나는 그라운드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이 흐름에, 인연에 그리고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