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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May 03. 2022

나는 가끔 연애를 의무적으로 한다.

그것은 일가기 싫어도 월요일이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나고 있는 사람이 환절기 감기에 걸렸다.  

넌 코로나에 걸렸다며 놀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검사는 음성이었다.


많이 아쉬웠다. 음성이라는 사실이.

양성이었다면 열흘정돈 데이트 걱정 없이 나 혼자 띵까띵까 놀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아프다고 징징 거리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애인으로서의 의무감이 나를 압박해왔다.


작업해야 할 일이 많았고, 온 힘을 다해서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정말 안 좋은 타이밍이었다. 업무상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 라는걸 그도 알고 있기에 '내 상태 확인하러 오지 않아도 돼, 감기면 너에게 옮겨 갈 수도 있어. 오지 마.'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크하게 말했으면서도 전화와 문자의 빈도수는 높아졌다.


특히.

유머 짤을 수십 장을 보내와서 기가 막혔다.

화장실로 향하며 그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냐는 물음에 그럼, 그렇지. 너는 이럴 때 아니곤 전화 안 하지, 하고 투정을 부린다.

나 오전 작업 이제 끝나서 욕조에서 몸 좀 풀 거야. 많이 아프면 약 먹어,라고 대답하며 그의 집에 챙겨가야 할 물건을 생각했다.


그래도 반신욕은 빼먹을 수 없었다. 40분 정도 물속에 누워 있다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하필이면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이라 도로는 사람과 차로 꽉꽉 막혔다. 정말 최악이었다. 심호흡을 했다. 난 방금 반신욕을 끝내고 나온 아주 상쾌한 상태라고. 오늘 빨리 애인을 달래주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마저 끝내면 된다고 위로했다.


마라톤 행사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 하나가 완전히 통제되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차 많이 막혔을 텐데 어떻게 왔어?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그가 말했다.

응, 정말 사랑해.라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아픈 와중에도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가 귀여웠다.

그러나 나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지금 일이 얼마나 밀렸는데. 나 아프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그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인상을 썼다. 그는 말 잘 듣는 착한 애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코를 푼 휴지는 따로 비닐봉지에 담았다.


코를 만지는 손과 나를 만지는 손을 분류해두었다. 쪽쪽쪽 소리는 내어도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입술을 절대 부딪혀 오지 않았다.  


나 역시 애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다.

그에게 엄마가 보내 온 만병통치약이라는 인삼 액키스를 건네줬다.


"얼마나 먹어야 해?"


"몰라, 그냥 많이 먹어. 몸에 좋다니까 감기가 떨어지겠지."


그리고 식탁에 앉아 잠시 글을 썼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애인이 내 표정을 따라 하며 놀리는 바람에 눈알을 굴리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네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오늘 내 하루는 너무나 완벽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연애의 감정이 삭막해진 건 아닐까 씁쓸했다.


그는 신나 보였지만, 나는 원했던 하루를 보내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이란 원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월요일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하지 않던가.


연애도 사랑이라는 것도 그런 건가 싶다.

하고 싶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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