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Day 22 in 후쿠오카
* 다케오
- 다케오 신사
- 다케오 녹나무
- 게이슈엔 정원, 요코 미술관
- 다케오 도서관
- 엔노지 절
- 미후네야마 라쿠엔 정원
* 요시노가리 유적지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기일이며, 내 생일이기도 한 오늘.
아침에 가족들에게 축하인사 잔뜩 받고,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도하자고 한 후 얼마 전 사가시에서 가지고 온 다케오 한국어 지도를 들고 다케오시를 찾아갔다.
다케오 온천역에 내리니 2월 14일은 flower day라고 생화로 기차역 입구를 한껏 멋지게 장식해 놨다.
잘 찍어서 가족방에 보내주며 다케오시가 내 생일 축하해 준다고 보내주었다.
다케오 도서관!
꼭 가보면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티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일본이네. 가 보고 싶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 데, 바로 내 생일에 가게 될 곳이 그곳이란 걸 알고 남편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했었다.
신나고 기분 좋게 길을 떠났다.
어제의 그 우중충하고 추운 기운은 다 사라지고, 새 파란 하늘에 흰구름, 맑은 날씨가 얼마나 나를 UP 시켰는지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기차 안에서 지도를 보며 노순을 정해보고, 실제로 도서관은 어떨까? 많이 궁금해했다.
다케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내가 가 보고 싶은 곳 6 군데 정도 정하고 어느 곳을 먼저 갈지도 생각해 보았다.(도서관은 젤 나중에 가려고 아끼고 있는 중)
다케오 신사를 먼저 가고, 신사 뒤에 100미터 정도 더 가면 있는 녹나무를 보면 되고..
녹나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 둘이 (내 또래정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서 옥신각신한다.
사진 찍어주냐고 말을 건네니 괜찮다고 했다. 난 한국인이고 여행 중이라고 하면서 지나쳤는데 10걸음도 안 걸었는데 급하게 부르더니,
한국 어디에서 왔냐며 혼자 여행하는 거냐며, 서울에 와 본 적이 있다며. 우리 또래 특유의 수다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왔다고 후쿠오카에 숙소를 정하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두 사람 중 한 분이 김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일본의 반찬들이 좋다고 대답하면서
한국말을 배운다길래 난 일본말, 당신은 한국말로 하자고 하니
자기의 한국말이 나의 일본말 보다 못하다며 깔깔 웃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가르쳐주며 3000년 되었다는 녹나무를 잘 보고 그들과 안녕히 가세요 하고 헤어졌다. 잠시동안이지만 유쾌한 동행이었다.
개인 정원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데 어플로 보니 걸어서 26분 왕복 거의 한 시간, 그래도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평지가 아닌 좀 경사진 큰 신작로를 따라 걸어야 해서. 숨도 차고 힘이 들긴 했어도 괜찮았다. 도착!
문이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다.
섭섭한 마음에 괜히 문만 한두 번 흔들다가 다른 곳을 가 볼까? 지도에 나와있는 여러 곳의 가 볼만한 곳을 검색해 보니 도보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이슈겐 공원, 요코 미술관, 중국 미술관)
맘 속에 꽁꽁 담아두었던 다케오 도서관을 들어갔다. 역시 검색해 보던 그대로였다.
-다케오 도서관은 검색해 보시면 참고가 될 것 같다.-
도서관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커피와 쵸코맛의 조각케익을 주문했다.
아침에 딸들이 꼭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직원이 커피 양과 컵 사이즈를 물어보다가 대답하는 폼이 외국인 같은 지 젤 작은 컵에 달라고 했는 데도 컵 종류를 꺼내놓고 젤 작은 거 맞냐고 확실하냐고 확인한다. 맞다고 하면서 내 생일이라 쵸코 케이크를 주문하는 거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직원 3명이 있었는 데 혼자 여행하는 거냐고 멋지다면서 몇 살이냐고 했다. 잠시 후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내주는 데 보니, 접시에 Happy Birthday와 내 나이가 쓰여 있었다.
깜짝 놀라 한 손으로 입을 막는 데 순간 눈물이 가득 고였다.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
3명의 예쁜 직원들이
축하합니다!!! お誕生日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라고 크게 말했고, (도서관인데도 불구하고)
내 뒤에서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던 사람들도 웃으며 가볍게 박수를 쳐 주었다.
너무 감동받아 눈물은 흐르는데 입은 웃고 있는 나에게, 편안한 자리에 가서 즐기라며 그들은 활짝 웃어주었다.
그들에겐 작은 배려였을지 모르지만 혼자 여행하면서 이국 땅에서 깜짝 생일 축하를 받은 나에겐 넘 큰 감동이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걸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했고, 이런 축하를 받아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자랑하고 싶었다.ㅎㅎ
커피와 케익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로 편하게 여유롭게 그렇게 한 곳에 앉아 있어 본 기억이 없었다.
어디든 가려고 움직였고, 뭐든 보려고 쉼 이란 게 없었다. 그래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렵지 않은 책을 골라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디밀고 앉아서 몇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쉬고 나서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역시 일부러 찾아올 만한 곳이었다.
다케오의 일정은 여기서 멈춤이다. 이 맘을 그대로 가져간다. 하고 배려로 나를 감동시킨 여행 중에 만난 천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난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그들은 나에게 남은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다케오 도서관에서 귀한 에세이 한편 쓴 셈이었다.
아주아주 행복한 맘으로 다케오를 떠나 어제 기차시간 때문에 못 간 요시노가리 유적지를 가고자 맘먹었다.
(어제 가보려다 실패했음에 약간의 오기도 발동하고, 시간이 맞을 것 같아 재 시도 한 것임)
역무원이 사가역에 가서 환승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도스역나 신도스역에서 갈아타는 줄 알고 있던 나는 약간 불안해하면서도 역무원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사가역에 내렸는 데 여기서 어떤 기차로 갈아 타야 하나? 기차 머리에 있는 안내판은 모두 종착역을 써 놨으니, 내가 가는 역은 중간에 있는 작은 역인데...
여기저기 살피다가 개찰구까지 가기는 싫고
어떤 할아버지께서 계시길래 요시노가리 가는 기차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신다.
잠깐 곁에 서 있는 데 세 냥짜리 작은 기차가 오고 기차문이 열리는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서 있던 우리는 뛰어야 했다.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진 다리가 불편하신지 뛰기는커녕 바삐 걷기도 벅차신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며 멈췄다.
어서 오시라 손짓을 해드렸다.
함께 기차에 올랐고 각자 다른 창밖을 보면서 가고 있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곁에 오시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아주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꺼내어 보여주셨다. 본인은 땅바닥에 있는 맨홀 뚜껑을 찍으러 다니신다고 했다. 찍은 사진을 계속 넘기면서 보여주시는 데 꽤 재미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으니, 대화가 쉽겠다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요시노가리는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알 길 없을 것 같은 기원전 1000년에서 800년 사이의 일본인들의 거주지등이 있는 일본의 유적지이다.
나도 특별한히 이곳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갈 곳 근처의 작은 기차역들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곳이었다.
요시노가리에 도착하였고, 어플을 보고 유적지를 찾아 걸어가고 있는 데 그분이 한 발자국 뒤에 오시는 게 느껴졌다. 아! 이 할아버지와 동행한다는 것은 남은 내 시간을 그냥 버려야 하는 거다라는 생각에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한참을 걸어 할아버지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주변을 촬영도 하고 느긋하게 걸었다.
유적지 들어가기 전 건널목에 서 있는 데 어느새 내 곁에 오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걸음이 빠르네요 歩く 速すぎるね.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는 데 할아버지는 동전지갑에서 동전을 골라내신다.
그 순간 ……
할아버지와 이제부터 함께 해야만 한다는 걸 직감했다. 마음을 접고 할아버지와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천천히 구경을 하는 데 본인은 아날로그라 컴퓨터도 하지 못하고 휴대폰도 구식이고 너무 아날로그라고 같은 말을 몇 번을 하셨다.
난 무슨 상관이냐고 괜찮다고 그때마다 대답해 드리며 맨홀 뚜껑 작업이 재미있다고 관심을 보였더니
72세, 도쿄에 사시고 (성함은 모르고) 어제 나가사키에 다녀오셨고, 오늘은 요시노가리에 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따가 사가시로 가서 하루 묵고 내일 도쿄로 가신다고 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였다. 그분이 나에 대해 아는 건 한국에서 온 사진 찍는 여자 그뿐!
내 휴대폰을 달라고 하시더니 날 한 장 찍어주셨다. 이로써 이번 여행 중 내 독사진은 며칠 전 다자이후텐만구와 오늘, 두 장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운 시골길을 걸어 역으로 와서 할아버지는 사가시로, 난 신도스 역으로 가야 했다. 시골의 아주 작은 역에 다른 방향의 기차를 타러 잘 가시라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데 여간 어색하지 않아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른 곳을 사진 찍기도 하며 눈길을 피했다.
내 기차가 먼저 왔다.
인사를 하려고 돌아다보니 모자를 벗고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기차를 타려다 말고 나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는 거다… 기차에 탔는 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바르게 서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안경까지 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기차 안의 여학생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했다.
도망가듯 빠르게 걷는 이유를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고, 유적지에 들어갈 맘이 없었는데 나랑 있고 싶어서 들어가셨을 지도, 여행 중에 만난 여행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죄송하기도 하고..
어제 왔더라면 못 만났을 텐데 그분을 만나려고 어제가 아닌 오늘 오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혼자 여행하는 며느리와 동행해 주신걸까?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어쨌든 만날 인연 었나 보다 두어 시간 함께 한 그분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다케오 도서관 감동받은 생일파티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고, 그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울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또, 훌쩍였다.
울음과 말이 섞여서 무슨 말인지 몰라해도 상관없었고, 내가 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내 부족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던 오늘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23296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