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꽝, 잠시 멈출 때인가 보다.

2월 12 & 13일. Day 20 & 21 in 후쿠오카

by 사진 찍는 미미

2월 12일

* 쉬는 날


쉬는 날이라도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 같아 아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오늘은 아무리 그래도 쉬는 게 낫다. 쉬는 게 낫다 진짜 느긋하게 , 천천히...라고 주문을 외웠다

혓바늘도 돋고 근처 카페로 가려고 하니 배낭도 무겁고 신발을 신으려니 발도 부은 듯싶다.

호텔 근처를 나가 맞은편 고등학교까지 가볍게 걸어갔다 왔다.

진짜로 심하게 과식하고 최고로 조금 걸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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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7보 걸음




2월 13일, 오늘의 일정

* 하카타역에서 구루메(久留米) 역 환승 지코쿠요시이역- 레트로 흰벽마을

* 미나미구루메 (南久留米) 역- 구루메시 미술관

* 구루메-구루메 성터, 신사.


원래 계획에 우키하 여행은 없었다.

기차여행에 자신이 좀 붙은 나는 예정된 두 곳과 검색해서 알아낸 다른 곳도 가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거였다.

이 욕심을 나는 데는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오늘부터 3일 동안 신칸센도 JR도 몇 번이고 탈 수 있는 표를 구입한 것이 제일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온다.

어젯밤부터 몇 번을 확인해 봐도 오늘은 비였다.

우비를 준비하고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수건도 한 장 넣고 나름 단단히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예정에 없던 우키하 역은 워낙 큰 역이니 역 주변만 봐도 좋을 것 같았고,

요시노가리는 일본 야요이시대 유적지라니 가 보고 싶었고, 환승시간만 잘 맞추면 문제없을 것 같아서

오케이 고고를 외치며 까짓 껏 비가 대수냐? 기세 좋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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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메역으로 와서 두리번거리다가 기관사 아저씨한테 우키하를 가려면 어떤 기차를 타냐고 했더니 장난감처럼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3냥짜리 기차를 가리켰다. 신나게 달려가 탔고, 달리는 기차에서 노선표를 보니 종점이 우키하가 아니었다. 주변인들한테 물어봐도 어리바리 시스템 모르는 외국인 여행자와 어르신 두 분과,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가 뻔한 여중생뿐인 걸… 여하튼 종점이 지쿠코요시이역인 건 다행이었다.

지쿠코요시이역 다음역이 우키하니까 우키하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꼬마 기차에서도 밖에도 찍고 기관사 옆에서 작은 창으로 보이는 기찻길도 열심히 찍으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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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에 거의 다다르면서 기관사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우키하 가는 기차를 타려면 지쿠코요시이역에서 내려 그 기차를 5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안 되는 일이었다. 50분 동안 뭐 하나?

내가 사진을 찍는 걸 본 아저씨는 애타는 내 마음도 모르고 사진을 찍으려면 지코쿠요시이역보다는 그 전역이 사진 찍기에 좋으며..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일단 원래 목적지인 지코쿠요시이역에 내려서 우키하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한 후 흰벽마을을 찾아가자 맘먹고 역에서 기차 시간을 확인한 나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50분 후에 있으며 3~4시까지는 아예 운행을 안 한다. 아주 작은 역이어서 몇 량 안 되는 기차만 드문드문 다니는 거였고, 어쨌든 이 역에서도 우키하는 가긴 가니까 구루메역 기관사는 그렇게 말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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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하 역까지 갔다가 다시 지코쿠요시이역에 와서 흰벽마을을 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무리하게 우겨서 간다면 난 오늘 숙소를 가지 못 할지도 몰랐다.

일단 흰벽거리를 찾아갔다. 어플로 찾아갈 때 첫 발자국을 잘 못 디뎠던탔에 방향이 틀려서 꼭 융통성 없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빙 돌아야 했다.

정 반대길로 들어섰다가 농기구판매점 아가씨의 도움으로 오던 길 되돌아서 가야만 했다.

흠~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선 (우산도 소용없는 세찬 빗길이었다) 나를 도와줘야지. 하고 휴대폰 속의 지도와 대화를 했다.

찾고 보니 역에서 금방인 것을 우비 입고 빗속에 고생만 잔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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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렌지 배낭을 기념사진으로 찍으려면 우비를 벗고 카메라를 안전하게 둬야 하고…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흰벽거리는 화창한 날에 왔더라면 참 예뻤을 거라 인정하지만 지금은 빗속에 무심히 바라볼 뿐,

고가도라는 갤러리 카페에서 차도 한잔하고 전시도 볼 겸 고가도를 찾는 데 한글로 검색해서인지 잘 안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세분의 어르신들한테 여쭤보았다. 모른다고 하셨다.

아는 일행이 두 분 더 나타났다. 그중에 한 분이 마침 이 거리의 지도를 가지고 계셨다. 그 지도를 보며 다섯 분이 그야말로 난리 굿이 났다.

난 웃으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는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그분들은 그분들 일인 것처럼.



결국에 못 찾아냈고 고마운 이분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던 나는 순간 나의 처지를 인지하고 슬퍼졌다.

그 순간 나는 그 한 분이 가지고 계시던 지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장소를 찾아내었다.

여기요. 여기를 가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며 사진의 아래 영문으로 쓰여 있는 글자를 읽으니 '고우가우도'다. 나는 '고가도' 라고 말했었다.

그제야 다섯 분의 어르신들은 각자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짓으로 , 큰 소리로 가르쳐 주었다. 바로 10미터 정도 앞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소개에서 보던 곳과는 다르게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어두컴컴하고, 옛날식 집인 모양이었다.

문은 닫혀 있고, 지금 날씨와 잘 어울리게 어두컴컴한.. 기념사진 한 장 누르고 나니 이제 뭐 하지? 하는 산처럼 다가와 안기는 허탈감!

중간에 자전거 보관소 같은 곳에서 우비 한번 털어주고,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다.

빗속에 여기 어디 들어갈 곳도, 볼 것도 없고, 투덜거리다가. 미나미 구루메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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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강스한 미술관과 아름다운 공원으로 간다는 생각에 흰벽마을의 예쁘지 않은 기억은 잊기로 했다. 으스스하게 춥고 비는 추적추적. 미나미 구루메 역에서 미술관까지 걸어서 20분. 주변은 카페는커녕 식당도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택가이다. 꼬불꼬불.. 입구도 참 이상하다 하며 어플이 알려주는 입구로 갔더니 철문은 굳게 잠겨져 있고, 주먹만 한 자물통이 달려있으며 월요일은 쉰다고 미술관이 휴관이면 공원도 못 들어간다고 쓰여 있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


월요일인 줄 모르고 여길 가라고 했냐고 남편에게 잔뜩 원망을 했더니 여기 형편도 모르고 공원이 예쁘니 공원이라도 보라고 했다. 화가 많이 나는 걸 깊은숨을 쉬며 참아냈다.

안타깝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우비 입은 내 모습이 처량도 맞아라..

다시 걸어서 돌아오는 길은 20분이 아니라 2시간 같이 지루하고 고되기만 했다.

현재 내 상황을 말하자 어차피 호텔로 돌아오려면 들러야 할 구루메에 가서 구루메 성을 찾아가 보면 어떻겠냐고 남편이 말했다. 그 역시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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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 구루메 역으로 가서 버스로 구루메성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버스정거장에 가서 구루메성에 가는 버스가 몇 번이냐고 물으니 가까이 계시던 아주머니도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모른단다.

다시 검색해 보니 구루메성터가 있고 신사가 같이 있다고 한다.

없는 구루메성을 찾았으니 현지인들이 황당했을 것 같았다.

날씨는 궂으나 시간도 많고 거기라도 가보자 하고 버스시간을 보니 27분 기다려야 한다.

어플에 보니 걷는 데 17분이다. 걷는 게 낫네 하고 돌아서는 데 앞에 걷던 아주머니가 바람에 밀려 제대로 못 걷더니 우산이 뒤집어져 망가지니 할 수없이 우산을 접고 비 맞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난 우비라 괜찮겠지 하다가 여하튼 이 날씨에 여기에서 뭐 하는 건지…




17분이라는 거리를 걸어서 다다르니, 고즈넉하고, 주변의 자연환경이 여기 또한 맑은 날씨에 오면 좋았을 곳이란 생각은 들었다.

비를 맞아 빨간빛 신사와 초록나무의 빛깔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예쁜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런 여행도 있는 거지 다시 못 올 곳인데.. 고요한 풍경 속에 있는 거 너무 좋은 건 맞잖아. 이 기분은 여간해서 느끼기 힘든 거야 ’ 하면서 내 마음을 위로하며 정화시켰다. 구루메 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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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역이나 신도스역에서 환승하면 요시노가리에 갈 수 있다고 검색해 왔지만 여기도 시골역이라 기차시간에 못 맞추면 낭패인 데다가 이 날씨에 이 차림으로 갈 자신도 없고 싫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요시노가리에는 안 가기로 했다.

덕분에 시골에는 기차가 드문드문 있다는 그 당연한 걸 배운 거였다.

남편에게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 내가 화가 나 있고 몹시 힘들어하고 있음을 표시하기에 그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과 달리 연락이 없으니 잘 다니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커져버린 화가 침묵으로 더 빠져들게 했다.


구루메 역에서 4분 남은 신칸센을 타려고 또 뛰었다.

언제쯤 기차역에 여유롭게 도착할 건지 맨날 뛴다.

신칸센을 타니 너무나 금방 도착했다.

JR과 신칸센의 차이는 정차하는 역의 수 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고달픈 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씻고 나니, 남편은 영상통화를 하자고 한다.

싫고 화나고 귀찮고 힘들고 하는 맘에 거절하고 싶지만 마지못해 응하니 속도 모르고, 요시노가리유적지에 갔다 왔냐고 물었다.(이곳은 자기가 추천한 곳이 아니라 내가 검색으로 알아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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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

단 한 가지도 맘에 들지도 않았고, 예상대로 되지도 않았고, 오늘은 꽝이었다.

하지만 이유 없는 일이 있을까?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고 기차를 공짜로 많이 타려고 욕심을 부린 탓에 생긴 것을 …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전부 리셋하고 다시 맞춰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상 리셋하고 다시 시작해도 언젠가는 또 멈춰 서야 할 때가 생길터이고…그래서

오늘은, 이때는 잠시 멈출 때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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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보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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