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Day 18 in 후쿠오카
* 구마모토 시내 트램을 타면서 여행하기
- 나츠메소세키 살던 집
- 구마모토 성
- 구마모토 박물관
- 구마모토 시청
- 뜻밖에 만난 구마모토 성당
- 구마모토 현대 미술관
- 스이도초 구로몽 스퀘어
- 스이젠지 공원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밤새 비가 온 모양이다. 바람이 불었다.
날씨 예보가 잘 맞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비가 오지 않기를…
어젯밤 티비 뉴스에서 나츠메소세키가 살던 집이 복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봤다.
어제 트램 하루 이용권을 사면서 지진으로 붕괴되어 들어갈 수 없었던 구마모토성 내부도 복원이 되어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말도 들었었다.
날짜를 바꿨다면 못 봤을 수도 있었겠다 하니, 역시 순리대로 오는 게 맞는 거였구나, 흐리고 비 예정인 날씨이지만 여행객한테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몇 년 동안 그리워했던 일본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웠던, 먹고 싶었던 음식이 거의 모두 있었고, 내 추억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여하튼 큰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변한 게 있다면
흰밥을 솥에서 퍼먹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내가 100, 200,300그램 선택하면 자판기 커피처럼 밥이 나온다. 아직 잡곡밥과 죽은 솥에서 퍼 먹는다.
조만간 그것들도 자판기에서 빼먹듯 먹게 될 거 란 확신이 들었다.
남의 이목을 좀 의식하긴 했지만 몇 번에 걸쳐 골고루 가져다 다 먹었다.
큰 손녀딸이라도 같이 있다면 그 어린것에 의지하여 더 갖다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기차가 오후 4시 2분이라 넘 일찍 나가면 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아침에 또 목욕탕에 갔다가.. 여유를 부리고 9시 30분경 체크 아웃을 했다.
남편은 구마모토성 내부를 볼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하며 스이젠지 공원도 좋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하였다.
로비에 앉아 어제 받아온 지도를 보며 박보검을 닮은 호텔 직원한테 나츠메소세키(夏目 漱) 집을 어떻게 가면 좋으냐고 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특정한 장소를 묻는 건 구글지도에서 검색이 안 될 때이다.
직원이 모르겠다는 듯 쭈뼛거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못 가보는 구나 하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커피를 마실까 하고 있었는데
얼마가 지난 후 그 직원이 어떤 지도를 가지고 왔다.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지도의 어느 부분을 동그라미 쳐주며 트램 11번에 내리면 걸어서 얼마 가지 않으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전엔 폐쇄했었는 데 복원해서 엊그제부터 개방한다고 말해주었다.
맞다고 어제 뉴스에서 봤기 때문에 가보고 싶어 져서 물어본 거라고 하면서 대학에 다닐 때 그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데 갑자기 폭풍 눈물이 흘렀다.
직원은 내 눈물에 당황하고,
내 눈물에 직원보다 더 당황한 나
는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말은 하는 데, 눈물은 그쳐지지 않았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나츠메소세끼 친척인 줄 알았을것 같은 직원은 슬그머니 가고
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을 꺼내서 닦으며 눈이 부을 정도로 한참을 울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진정하고 여행하라고 하는데
큰 딸아이가 “감수성이 많은 우리 엄마 제대로 힐링하시네요” 했다.
그러고 보니.. 감수성이 이미 없어진 줄 알았다. 나츠메소세키라는 이름이 그리웠던 게 아니라 내가 순간적으로 그의 작품을 공부하던 20살로 갔었던 모양이라고 해석해 보지만.. 왜 그렇게 폭풍 눈물이 흘렀는지 왜 무엇 때문에 라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어 얼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일단 진정을 하고 난 후 그 직원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귀국하면 그 호텔에 칭찬합시다 라는 코너가 있다면 하고 싶었다.
어제 봐 두었던 트램 정거장으로 갔다
트램 A, B선은 서로 반대로 도는 순환선이라고 짐작했다.
나츠메소세키가 살았다던 집을 먼저 가기로 했다.
어플에는 정확한 지명이 아니라 그런 지 나오지 않고,
종이로 된 지도를 보며 찾아갔다. (역시 나는 어플보다는 종이지도가 편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 데.. 주춤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거의 다 왔다며 자기도 거기에 가는 중이라며 함께 가자고 했다.
도착했더니 그 옛날 20년보다 더 전에 에히메현 마츠야마에서 마사오카 시키 세미나에 갔을 때 뵌 이마무라 선생님 같은 분이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하려고 한다. 죄송하지만 저는 일본어를 조금밖에 못 하는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다. 왜냐하면 막상 그가 살던 집에 가보니 호텔에서 안내를 받을 땐 복받쳐 눈물 나던 감정이 아니고, 그 시절 좋은 기억에 미소가 지어지고, 조용히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츠메소세키가 앉아서 정원을 바라봤다는 방석에 앉아 보았다.
내가 20살 때 만났던 거의 잊고 있던 그 작가를 떠올렸다. 아니 나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안내해 주신 분께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구마모토에서 만날 줄 전혀 몰랐던 나츠메소세끼와 나의 그 시절과 안녕하고 구마모토성으로 향했다.
날씨는 계속 흐리고 비가 오려고 꾸물꾸물
길을 잘 못 들어 엉뚱한 길로 가다가 (지금 열고 있는 입구가 남쪽 문인데 어플은 가까운 아무 문이나 안내를 했기 때문이다. 역시 어플은 아직도 나와 안 친한 것 같다)
나처럼 지도를 보면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같이 가자고 하면서 자기는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잘 못 들어 속상해하고 있는 나에게 자기는 후쿠오카에서 왔단다. 나도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후쿠오카에서 왔다고 하면서 웃느라 좀 맘이 풀렸다. 서로 여행 잘하라고 기원해 주면서 헤어지고 난 구마모토 남쪽 입구로 갔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 데 카메라 가방만 가릴 일이 아니다. 서둘러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면서 우비를 입었다.
그 모습을 찍어서 보냈더니 막내딸은 예쁜 우비다라고 말했고, 큰 딸은 우비도 가져갔어요?
정말 안 오시는 거 아닙니까? 하면서 농담을 했다.
얼마 전 내가 이제 현지말도 잘 들리고 익숙해졌는데 여기에서 더 살까 했더니 그에 대답을 이렇게 한 것 같다.
내가 갈 거라고 했다. 손녀딸들도 너무 보고 싶고, 그렇지 않아도 가끔 큰 손녀딸은 지 엄마나 할아버지 전화로 미미가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카톡을 보내오는 터였다.
구마모토 성에 들어가려고 입장권을 사는 데 하루 트램권을 사면 840엔을 640엔으로 할인해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돈과 함께 보여주고 거스름 돈을 받다가 그만 100엔을 떨어뜨려 마룻장처럼 생긴 바닥 틈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옆의 안내원이 억 하고 소리를 내더니. 포기하라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구마모토성 재건에 100엔을 기부한 셈이었다.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구마모토 성 안의 가 볼 곳 세 군데 정도 추천해 줬지만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추가했기 때문에 다 못 보고 다시 내려올 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구마모토성에서 나와 구마모토 시청과 박물관에 들렀다.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다.
구마모토 현대미술관을 찾아 가 전시 작품을 보고 걷는 데 왼쪽 골목안으로 성당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행하게 해 주심에 감사하고 우리나라와 내 가족, 여행에 도움을 준 천사들과 주변인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스이도초에서 쿠로몽 스퀘어에서 퍼레이드가 있다는데 비가 오니 하지 않는가 보다. 매장만 들러보고 스이젠지 공원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간 스이젠지( 水前寺成趣園 ) 공원.
세상에 어머나 이렇게 예쁘게 사람이 만들어 낸 공원이 있을까? 지금도 다가오는 봄을 위해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뭇가지들을 정리 중이다. 이 꽃들이 다 핀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참으로 예쁘게 만든 정원이다. 한 바퀴 천천히 산책하면서 평화를 생각했다.
원래 3시까지 역에 돌아가는 게 목표였다. 지정석을 예약하고 왔기 때문에 미리 가 있으려고 했다. 몸은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해서 축축하고..
그런데 스이젠지 공원에서 나오다 보니 한국어 안내가 있다 보니까 아까 보았던 공원 신사내에 나츠메소세키가 마사오카시키 (正岡 子規) 한테 보낸 하이쿠(俳句) 시비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곳이 어딘 지 아는 탓에 돌아서서 막 뛰어들어 갔다.
옛 친구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보고 사진 찍고, 매표소 직원한테 빠이빠이 손인사하고 트램 역으로 오니 3시 20분이다.
아!! 기차를 못 타게 생겼다 15 정거장을 가야 하는 데 1 정거장에 3분을 잡아도 33분 걸릴 것 같고, 도착예정시간은 3시 53분 (기차시간은 4시 2분이었다).
역에 들어가서 플랫폼 확인도 해야 하고..
이번 여행의 최대 난국에 빠졌다. 교통비가 비싼 곳이라 JR패스로 왔는 데 기차표를 다시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급히 남편에게 연락하고 못 탈 경우를 물어보니, 못 타면 다음 기차 자유석으로 타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좀 안심은 되었지만 저절로 손톱을 물어뜯게 되고 이마를 너무 긁어서 아플 지경이 되었다.
아! 이 트램이 신호등마다 걸리고, 중간에 운전기사까지 바꾸느라 더 지체하는 것 같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앞으로 가서 기사한테 역에 몇 분 도착이냐고 물으니, 56분이란다. 난 4시 2분 기차를 타야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주어진 시간 6분.
내가 내려야 할 역은 3번 역, 지금은 4 번역! 난 배낭을 위아래 잠그고 내리는 표 와 역에서 하카타 갈 표까지 꺼내기 좋은 바지주머니 앞에 넣고 최대한 단단히 준비를 했다.
내기 100미터를 얼마에 뛸까? 플랫폼 번호는 얼마나 빨리 볼까? 애가 타서 온몸이 저릿거렸다.
사람들한테 부딪히면서 미안하다 기차시간 때문에 를 연신 말하며 앞으로 전진 맨 앞에 섰고 3 번역에 서자 난 표를 보여 줬지만 기사는 보지 않고 빨리 내리라 손짓하면서 자기 시계를 보았다. 그도 나 못지않게 애가 탔던 모양이었다.
그 또한 운전하는 내내 내가 기차를 탔을 까 생각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리자마자 마구 뛰었다. 플랫폼 번호를 보고 또 뛰었다. 평소에는 3번 정도는 물어보고 가는 길을 그냥 뛰었다.
헉헉거리며
마침 마이크를 잡고 곧 기차가 도착한다는 방송을 하고 있는 직원에게 말보다는 표를 디밀었더니 맞다고 했다.
지정석에서 아주 편안히 앉아서 잘 왔다.
나의 구마모토 여행은 한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구마모토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카타 버스터미널에 가서 내일 가야 하는 다자이후텐만구행 버스를 왕복으로 예매하라고 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바로 옆 건물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직원이 있길래 물어보니 버스예매는 끝났고, 내일 기계에서 사면되고 IC 카드도 되니 그냥 버스에 타면 된다고 했다.
610엔이나 되니 꽤 먼 곳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카톡으로 전했더니 왜 예약 안되냐고 다시 물어보라고 했다.
내가 가고 오는 길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다시 한번 물으니 안된다고 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 데 일본의 해는 일찍 지니까 벌써 어둑어둑, 식당에 걸어갔다가 밥 먹는 시간, 다시 걸어 집에 가기.. 하고 생각해 보니, 시간도 많이 지체될 것 같고,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어졌다.
버스터미널 건물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 가기로 했다.
젊은이들이 줄을 많이 서있고, 버거를 받으려는 무리도 꽤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쭈뼛거렸는 데 제법 유창하게 주문한다, 콜라 싫고 단품에 감자튀김, 햄버거 작은 사이즈.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버거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는 데, 비가 내린다. 그냥 걷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이었다.
길가에 서서 주섬주섬 우비를 입고 햄버거 봉지를 가슴에 꼭 안았다.
하루를 비웠고, 기다리는 이 없는 곳인데도 집이라 생각하니, 긴장감이 풀어지며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햄버거를 봉지를 잘 풀어 먹는다. 제법 시장했었는 데, 다 먹질 못했다.
반쯤 남기고.. 뚜껑을 닫았다.
남편과 영통을 하는 데 친한 친구를 만났단다.
건강하게 씩씩하게 여행 다니는 아내가 있는 본인이 행복하다는 걸 알았단다.
내가 하카타행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탈 줄 알았다며 몇 걸음 걸었냐고 하길래 만 팔천 보 넘게 걸었다니 맨날 그렇게 걸어 괜찮냐고 걱정했다. 마음이 아주 따뜻해졌다.
예약해 온 3일간 기차표로 여행 중의 여행을 했고, 그 기차표를 무사히 다 쓴 날이었다.
p.s. 귀국 후 박보검을 닮은 그 남자 직원 칭찬과 감사를 예약 사이트를 통해 했다.
만 팔천 천몇 백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