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은근히 시켜 먹네

아무 일 없는 척 웃은 그날, 아이는 혼자가 되었다

by 스윗

"애 은근히 시켜 먹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차를 세울 뻔했다.


다른 엄마라면,

그 순간 어떻게 했을까.


풀 죽은 아이의 얼굴.

핸들을 잡은 손이 조금 흔들리는 걸 느끼자

차를 돌리고 싶었다.


차를 돌려야 했던 걸까?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갔어야 했던 걸까.


이럴 때,

당신이라면 차를 돌렸을까.

아니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을까.


엄마인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인아~
오늘 예나랑 딸기 농장 가자."
"우와 신난다.
딸기. 딸기"

발을 동동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아인이와 나,

예나와 예나엄마


우리 넷은

초겨울의 길에서 기분 좋게 딸기농장으로 향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던 길이었다.


인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예나야~
우리 구름 따먹기 놀이하자!”

그때-

예나 엄마의 날 선 말이

차 안의 공기를 가르듯 스쳐갔다.


“애 은근히 시켜 먹네.”


"무슨 말이지”

"내가 잘 못 들은 걸까."


차 안의 얼어붙은 공기와

백미러로 본 아인이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풀까지 죽어 꼭 다문 입술, 서글픈 눈빛,

떨군 고개는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고민하던 사이에 우리의 차는

딸기농장에 도착해 있었다.


운전대를 거칠게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나서 동동 거리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난, 어쩌지.라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고 있는 예나엄마를 보며,


시간이 지나 다시 웃고 있는 아인이를 보며

나 또한 웃어넘겼지만,

마음은 그때 그 시간에 멈추어 있었다.


아이와 둘만 하는 시간을 즐겁게 채우고 싶었던 나는

아이와 구름 따먹기 놀이를 자주 하곤 했다.

"아인아~ 하늘 봐봐
구름이 솜사탕 같아
쇼쇼쇽~ 달콤해."
"우와~
나도 나도
쇼쇼쇽
와~ 달콤해. 맛있따."
"엄마 엄마
나 예나랑도
구름솜사탕 따먹을래요"


즐겁고 신나는 놀이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하고 싶어 했을 뿐인

30개월 아이였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처음엔 아이들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어른들의 감정이

아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날 처음 느꼈다.

아이들 사이의 온도는,

어른의 말 한마디로 바뀐다는 걸.


비슷한 육아관, 같은 성별, 비슷한 개월 수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걸까.


문화센터를 다니던 나는

종종 예나엄마의 날 선 목소리에

온몸이 바짝 마르곤 했다.


“아인이, 예나. 어서 와~
오늘도 선생님이 재밌는 놀이 준비했지.
아인이 소근육이 좋구나.
혼자 과자 봉지도 뜯네.”
“너 집에서는 잘 뜯잖아.
왜 못 뜯는 애처럼 뜯어달라는 거야.”

날이 선 예나 엄마 목소리.


"저희 아기는
생일이 20일 정도 늦어요."

갑작스러운 예나 엄마의 생일 이야기에 나 또한 날이 섰다.


불편하다.

억지로 웃으려니 온몸의 근육이 더 경직되는 듯했다.


엄마와 단 둘이 보내던 아인이의 일상에

가끔이지만,

예나와 함께 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나 보다.


나보다 예나 엄마를 더 따르는 걸 보면서

고맙고 또 고마웠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씩.

연락을 줄이고 있었다.



"아유~ 귀여워."를 수없이 말하지만

만남이 늘어날수록 아인이를 보는 차가운 눈빛.

날이 선 말 들.


좋아하는 이모의 시선을 받고 싶어 끊임없이 보아도

단 한 번의 눈길도 없어 풀 죽어하는 아이를 보며

그 속에서 서늘함과 차가움을 느꼈나 보다.


엄마인 나는 언제쯤

온전히 내 아이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아이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나의 침묵이

사실은 아이를 가장 먼저 혼자 남겨두는 선택이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이제 아인이의 손을 잡고,

따스한 볕이 드는 곳으로만 걷기로 다짐했다.


아이의 외로움을 참고 견디게 만드는 어른의 편에,

나는 더 이상 서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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