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닥복닥.
엄마에게 보채는 날이었지만 평온히 잘 달리는 듯했다.
하지만, 현관 앞에서 울음이 터진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은 눈을 뜨자마자 아이의 짜증이 시작됐다.
예민한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
나 역시 예민했기에,
아침 공기 속 미묘한 불쾌감을
아이가 먼저 알아챘다는 걸 안다.
“힘들겠지, 내 아가.”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던 마음도 잠시,
현관 앞에서 터진 울음은
결국 엄마의 한계를 건드렸다.
“신발 스트랩이 아니야! 아니야!”
울부짖으며 수십 번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아이.
숨을 고르려 했지만,
몸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온 건 ‘한계’였다.
아이의 공기를 먼저 알아차린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손을 무심코 뿌리쳤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외쳤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그 순간,
내 안의 괴물이 얼굴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 위에 머리를 묻었다.
크게, 아주 크게 숨을 쉬었다.
그러자 괴물이 조금씩 작아졌다.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아이를 다시 안았다.
“엄마가 순간 힘들었어.
이젠 괜찮아. 엄마가 숨 크게 쉬었지.”
“짜증이 났어? 힘들었어?”
내가 물었다.
“그래, 그랬겠다.” 우리 아가.
그래, 그런 날도 있지.
마음대로 잘 안되면 짜증이 나지.
내 말에 위로를 받은 걸까?
아이의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다.
“스트랩 헐껍게? 아라찌?
소리는 크게? 아라찌?”
신발 스트랩을 헐겁게 잠그며
“소리가 더 크게 나야 좋았던 거구나?
그걸 엄마가 몰랐구나.”
라고 말하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41개월의 아이는,
정말 디테일한 존재였다.
(그래, 예민한 게 아니라
너는 너만의 완성을 추구하는구나.)
“엄마가 다시 해볼게.
혹시 잘 안돼도… 기다려줄래?”
아이는 기다려주었다.
내 눈물을 닦아주며,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엄마도 아직 잘 안돼.
그래도 연습해볼게.
네가 원하는 대로 될 때까지, 기다려줄래?”
아이는 웃었다.
그 미소 속에,
내 안의 괴물이 사라지고
작은 꽃이 피어났다.
내가 회복할 때,
아이도 함께 자란다.
그날,
나는 아이를 통해 ‘기다림’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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