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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Feb 17. 2021

사라져 가는 관계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소설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는 2014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2016년 출간된 이 책에는 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비롯해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담담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한 분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용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내 마음도 침잠해갔다.


담담한 문장들로 녹여낸 디테일한 감정들

 

이 책의 첫 번째 단편인 <쇼코의 미소>는 한국인 소녀와 일본인 소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 소유의 집에 일본 교환학생 쇼코가 머물게 된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쓰는 두 소녀는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영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간다. 


작가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담담한 문장에 담아낸다. 여자들이라면 겪어봤을 친구사이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들을 써 내려간 문장들은 '아, 나도 이런 적 있었는데'라고 공감하게 만든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소설 속 화자인 소유는 이어지고 끊어지면서도 쇼코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여느 20대가 그렇듯 소유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며 성장해간다. 고등학교 때는 자신보다 단단하고 우월해 보였던 쇼코가 어른이 되고 연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쇼코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런 쇼코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듯.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하지만 그녀가 쇼코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도 소유처럼 당시에는 진실이라 생각했던 믿음으로 수많은 우정들을 그냥 떠나보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우정들이 수많은 오해들로 끝나버리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훗날 오해를 풀고 다시 만나는 해피엔딩은 소설이나 영화에나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므로. 


누가 남겨지고, 누가 떠나는 걸까?


소설 속 하나하나의 단편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헤어짐은 다툼도, 통보도 없다. 그냥 어떤 지점에서 균열과 빈틈이 생기고, 소리 소문 없이 멀어진다. 그 균열은 <신짜오, 신짜오>에서 처럼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일 수도 있고,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처럼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일 수도 있고,  <한지와 영주>에서 처럼 끝끝내 알지 못한 마음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놀라운 이유는 멀어지는 관계의 균열과 빈틈을 놀라울 만큼 디테일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의 멀어짐에 대한 문장들도 마음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 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 


내 친구, 내 이모, 내 엄마, 내 할머니였을지 모를 그녀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고 하나 같이 안쓰럽고 애처롭다. 쇼코도, 순애 언니도, 영주도, 미카엘라도 주변에 있다면 꼭 안고 위로해주고 싶은 인물들이다. 그녀들은 어쩌면 내 친구, 내 이모, 내 엄마, 내 할머니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마음이 아팠나 보다. 책장을 덮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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