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려움에 앞선 설렘

by 노란고구마


무사히 도착한 제주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눈을 밟으며 흰 입김을 내뱉었는데,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하늘로 곧게 뻗은 푸른 야자수가 반겨준다. 빌딩 숲에 익숙했던 눈에 비친 이국적인 풍경이 진짜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케 해 주었다.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온 숙소 가는 방법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숙소는 올레길 1코스가 있는 성산일출봉 근처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터미널로 이동해 다시 동일주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제주도는 옆으로 누운 고구마처럼 동서로 길쭉한 타원형이다. 차를 타고 서너 시간이면 외곽으로 둥글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올 수 있다.

제주 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서귀포터미널까지 노선은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 해가 뜨는 동쪽 끝 성산으로 가기 위해 동일주 버스에 올랐다. 시간표에 적힌 배차 시간을 확인해보는데 대략 한 시간에 한 대가 있었다. 몇 분 간격으로 버스가 오던 도시의 일상이 이곳에선 당연한 게 아니었다.

또한 지금은 카드 한 장으로 전국에서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지역마다 교통카드가 달라서 내리는 장소마다 다른 요금에 맞춰 현금을 준비해야 했다. 낯선 환경에 놓이면 비로소 익숙했던 일상을 새롭게 재발견하게 된다.

관광버스처럼 전 좌석에 앉아서 가는 버스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렸다. 정류장 사이의 거리가 멀고 간선도로를 지나기에 서서는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수평선이 끝없이 이어진 바다가 펼쳐졌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여유로워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이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줄곧 혼자서 하는 여행을 꿈꿔왔다. 하지만 늘 실천보다 핑계가 앞섰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듯 느껴졌고, ‘할 수 있는 이유’보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는데 더 능숙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였지만 돌이켜보면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수평선도 경계를 잃고 사라져 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고기잡이 배의 불빛이 한데 섞여 일렁인다. 혹시라도 내릴 곳을 놓칠까 봐 평소처럼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대신 버스 안내 방송을 집중해서 들었다.

종달리 정류장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두개의 버스 정류장 사이에 숙소가 있어서 미리 전 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가는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잘 찾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수였다. 다음 정거장이 훨씬 더 가깝고 쉬운 길이었다. 가로등은 드물었고 처음 마주하는 낯선 길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실수를 해도 그 책임은 전적으 자신의 몫이다. 처음에는 실수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반복하다 보면 실수는 줄어들고 어느새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선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습관은 새로운 일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용기로 이어진다. 마치 최초의 인류가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을 내디뎌 문명을 일궈냈듯이 말이다.

다행히 근처 식당 문을 닫고 나오시는 아주머니를 만나 길을 여쭤보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길을 잃고 헤매던 그 까만 어둠 속에서 맡았던 짠 내 섞인 바다 냄새가 기억 속에 선명하다.

당황스럽고 서툴렀던 순간일수록 그 실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다음에 더 잘 해낼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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