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좋은 길이 어디입니까

by 노란고구마


좋은 길을 추천해 주세요. 올레를 걷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자, 모든 코스를 완주하기 전에 나 역시 앞서 길을 걸어본 분들에게 수없이 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타인이 추천하는 길을 막상 걸어보면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좋았던 길이 내게는 그저 지루하고 고단한 길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올레길의 모든 구간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오름을 미끄러지면서 올라야 한다. 결국 좋은 길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상태와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였다.


내가 어떤 길을 좋아하는지 ‘좋음’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없었기에 타인의 추천에서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라 길을 걷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지 나만의 기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길을 걸으려고 신발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남들이 좋다는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었지만 하루 만에 밑창이 닳아버려서 발바닥을 아프게 했다. 다음에는 여행자들에게 좋다는 등산화를 신었으나 무겁고 딱딱한 등산화는 아스팔트와 흙길이 섞인 올레길에서 발을 퉁퉁 붓게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신발이 정작 내 발에는 좋은 신발이 아니었던 셈이다.


몇 켤레의 신발을 갈아치운 끝에 내게 좋은 신발을 찾으려면 먼저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 걸어도 편할 것, 거친 길을 견딜 만큼 튼튼하고 방수 기능이 있을 것, 그리고 가격이 합리적일 것. 이 기준에 맞춰 찾아낸 신발은 올레 전 코스를 완주할 때까지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동안 내가 좋다고 믿었던 기준들이 사실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집안처럼 흔히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것들은 경제적인 잣대로만 획일적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하지만 ‘좋다’는 가치는 가격표보다 개인적인 만족에서 찾아야 한다. 수많은 광고가 주입하는 기준이나 사회에서 강요하는 일관된 기준이 아니라,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찾듯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좋은 길을 찾는 여정 또한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지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직접 길을 걸어보고, 여러 번 걸어보면 내가 무엇이 좋은지 알게 되고 그렇게 나만의 기준이 생겨난다.


이제 누군가 좋은 길이 어디냐 물으면 성급히 몇 코스라고 알려주는 대신 무엇을 보고 싶은지 다시 되묻는다. 아이와 함께 걷고 싶다든지, 완만한 오름을 오르고 싶다든지, 주상절리를 보고 싶다든지 각자의 기준에 따라 거기에 맞는 길을 추천을 해준다.

나에게 좋은 길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길이다. 오늘도 내게 딱 맞는 신발을 신고 나만의 좋은 길을 찾으러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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