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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Mar 05. 2022

지금 여기, 이 순간.


눈을 떴다. 방 안이 햇살로 가득하다. 천장을 응시한다.   

  

5, 4, 3, 2, 1     


오늘도 눈 뜬 채로 가위에 눌린다.

발 끝에 힘을 주며 깨어난다.     


두 장정이 심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물기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돌려대니,

이러다 진짜 말라비틀어질 것 같았다.


‘이보쇼! 러다 진짜 가슴 찢어지겠소.’     


한껏 힘자랑을 하더니 이내 사라진다.      


엄마가 떠나고 한동안 계속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현실을 직시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함께 있던 생명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밤이 되었다.    


꿈을 꾸었다.

와!

오늘 꿈 대박이다.

엄마가 나왔다.     


관람자가 되어 꿈속의 나를 바라본다.     


오늘 장면은 교습소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다.

그런데 갑자기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어디론가 급히 달려간다.

짜식. 넌 꿈에서도 바쁜 척이냐.

 

다시 부랴부랴 강의실로 뛰어들어온다.

필통을 두고 온 것이다.     


발칵!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

텅빈 공간에 필통만 그대로 놓여있다.  

   

덩그러니-     


두 장정이 다가와 심장을 짓누른다.

슬픔이 밀려와 가위에 눌리기 시작다.

발끝에 힘을 주지 않고 가만히 있다.


‘엄마가 정말 떠났구나. 내 필통을 챙겨주지 않았어.’     


이따금 그날의 꿈이 떠오를 때마다 심장은 마른 꽃잎이 되어갔다.

그러고 보니 수업을 듣는 동안 엄마 얼굴이 유난히 힘이 없어보였다.

   

‘그래. 필통을 가져가주지 못할 걸 알고 미리 슬퍼했던 거야.’



“띵동”      


유치원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새 학기 준비물 목록이다.      


색연필, 사인펜, 실내화, 물통, 연필, 지우개,

그리고 필통.     


아이 손을 잡고 문방구로 간다.

색연필도 사고 사인펜도 사고 연필이랑 지우개도 샀고, 이제 필통만 남았다!

야무지게 고른 줄무늬 필통까지 한아름 계산을 다.     


집에 와 준비물을 챙기다 보니

엄마 노릇 하고 싶어 진다.

쭈그리고 앉아 아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이름 써놨으니깐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필통이랑 꼭 잘 챙기고?”     

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응!” 한다.     


이때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들왔다.


'이구. 너나 잘하셩.'     


오잉? 울 엄마 맞네?

맞다. 나부터 잘하면 된다. 웃으며 끄덕인다.

     

아이와 장 보러 가는 김에 재활용을 한 아름 다.

상자가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없다.

후다닥 손을 비우고 슈퍼로 가는데 아이가 발걸음을 멈춘다.    

  

“엄마! 내 킥보드!”     

“킥보드? 그거 집에 있잖아.”     


다시 출발하려는 내게 아이가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 잠깐 기다려봐! 내가 가져올게!”     


우다다 달려 경비실 앞으로 간다.


앗. 킥보드가 저기 있네?

아이가 집에서부터 타고 나왔는데 짐을 드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9년 전 꿈은 슬픈 꿈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건 그냥 네 물건은 네가 챙기란 꿈이었다며,

낄낄 웃었다.


아 그렇구나! 맞네 맞아.      


‘알겠쇼요 엄마. 걱정 말고 조심히 가셔요.’     


그녀는 떠나기 전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그 시간에 아이의 눈을 많이 바라봐주라고 말이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이,

지금 너의 전부라고 말했다.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니 아이는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조심해! 차 온다!”      


“엄마 빨리 와!”     


웃으며 힘차게 달려본다.     


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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