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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May 16. 2023

[엄마의일기장] 기다리는 마음


살포시 옷장을 엽니다.

아기 옷들을 정성스레 꺼내어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병원에 들고 갈 겉싸개와 속싸개, 배냇저고리 입니다.

혹여나 소재들이 겹칠까 그마저도 나누어 아기옷 버튼을 눌러 오랫동안 빨래합니다.


그동안은 세 식구 옷을 마구 모아 신나게 돌리고 건조기로 휘리릭 끝냈지만,

태어날 아기 옷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빨랫대를 주문해 하얀 살마다 닦고 또 닦았습니다.

형아가 될 든이도 돕겠다며 입을 야무지게 앙 다물고 빡빡 같이 윤을 내주었습니다.


완성되었다는 숭어 멜로디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전에 세면대로 향합니다.

세정제로 손을 깨끗이 하고 손가의 물기도 착착 끝까지 말려준 뒤 세탁기로 향합니다.


원래는 터프하기가 탱크 같은 저인데,

세탁문 마저 살살 엽니다.

거기... 누구 있나요~?

 

혹시 드럼통 위쪽에 찰싹 붙어있는 것은 없나 고개를 넣어 꼼꼼히 살펴봅니다.

신생아를 대하듯 아기옷들을 꼬옥 껴안고

살금살금 옷을 널러 걸어갑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옷이라니..

손 싸개를 보니 진정 사람 손이 들어갈 곳이 맞는가 싶어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바라봅니다.

모자 속에 손을 넣어 오므렸다 펴보기도 하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내음새도 맡아봅니다.


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요로케 너나 죠로케 너나

어차피 입히고 살다 보면 똑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걸까요.?


아기를 위한 예의와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문득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10년도 더 오래전, 다음날 아침 생방송이 있기 전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다 밤늦게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주무시지 않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생방송을 하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치기 어린 저는 당당하게 말씀드렸지요.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내일 방송은 오랫동안 해와서 익숙하며

프롬프터도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저를 더욱 나무라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내일 방송을 잘 끝마칠지라도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임한다면

그것은 네가 방송을 잘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언성이 높지는 않았으나

진지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그 말씀이 어찌나 저를 부끄럽게 하던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고,

사람들 보기에 좋고,

운 좋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배워갑니다.


그분 보시기에 좋은 일이란,

남들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임한 자세와 마음은

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덕분입니다.



첫 아이를 데리고 조리원에서 어머님댁으로 들어왔을 때,

보이지 않는 옷장 속까지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신 어머님을 보며

힘드신데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하셨느냐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님의 손길이 닿은 집에 들어서면

저도 마음을 다잡고 정성을 다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와 사랑이 느껴져 도무지 대충 할 수가 없었거든요.


아이의 숨결 하나에 집중하고

작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일상에 정성을 다하고.

이러나저러나 열심을 다하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아이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요.

어쩌면 아이보다 저에게 더 돌아올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타자 가재 수건들이 한 아름 거품 속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반가운 슈베르트 노래가 들려오면 한번 더 손을 닦고

빨랫대에 정성스레 음표를 걸어보려 합니다.


함께 숨 쉬는 이 순간이,

고요히 오가는 들숨과 날숨에,

당신과 함께할 수 있음에,


오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젯밤 널어놓고 잔 빨래. 아침이 밝아오니 보송보송 말랐어요 :) 한 달 뒤에 건강하게 만나자 방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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