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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옆집 엄마

by 이윤지

이사 오고 옆집 엄마와 인사를 나누던 첫날이 생생하다.

유모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가려던 중 문을 열고 나오는 그녀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이사 오셨나 봐요. 어머나 아이는 몇 개월이에요?”


먼저 말 걸어준 그녀는 어찌나 시원시원하고 친절하던지 처음 본 내게 동네 소개를 상세히 해주었다. 집안에 아이가 둘이라 큰 소리가 날 수 있다며 먼저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도 건네었다.


당시 나는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이와 매일 집에서 뒹굴고 있었다. 웃을 일도 많았지만 사람을 만들어보겠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큰 소리를 낸 다음엔 자책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날 옆집 엄마의 호통 소리가 들려오면 꼭 내 모습 같았다. 나와 같은 심정이겠구나. 비록 마주하지 않아도 육아 동지가 된 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집에서만 지내다보니 세상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졌다. 아이와 집 앞 놀이터에 처음 나간 날 너무나도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 속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황했었다. 다들 서로 친해 보였다.


잠시 둘러보니 동네 아이들이 한 곳에 모여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장아장 그쪽으로 걸어간 아이는 누나 형아들 사이에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이었으면 아이들에게 “얘야 동생에게 분필 하나만 빌려줄래?” 하고 말했을텐데

그땐 모든 게 조심스러워서 아이랑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왔구나? 이거 형아랑 같이 해봐.”


옆집 엄마였다. 알고 보니 이 분필 세트의 주인이었다.

호탕하게 웃어 보인 그녀는 이어 엄마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 옆집에 이사 온 엄마예요!”


어찌나 쑥스럽던지 나는 고개 숙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면서 웃기만 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그날 끝까지 놀지도 못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며 아이를 데리고 먼저 올라갔드랬다.


그 후로도 옆집 엄마는 참 많이 베풀어주었다.

복도에서 만나면 기다리라 하고는 친정엄마가 보내줬다며 사과를 한가득 주었고,

놀이터에서 만나면 형아를 통해 우리 애에게 먹을 것도 챙겨주었다.

나도 기회를 노리며 뭐라도 주려고는 했는데 받은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옆 단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날이 되었고

옆집 엄마는 아이들이 읽었던 책이라며 우리 집 현관 앞에 아동 서적을 한가득 남겨두고 갔다.

높다란 책 꾸러미는 그녀가 품은 사랑 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우리 아이는 옆집 엄마가 준 책들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는다.

한 권 한 권 읽어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소심하고 쑥스러움 많던 나는 점점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일도 조금씩 시작하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너스레도 떨줄 알고 들이대는 것도 더 잘하게 되었다.

이제는 처음 보는 엄마에게 "어머 아이 몇개월이에요?" 능청스럽게 말도 먼저 건다. 지난번에 놀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와는 급격히 친해져서

우리 아이와 또래인 그 손주 집에 초대받아 오기도 했다. 엄청난 발전이다.


얼마 전 막막한 마음으로 동네 어린이집을 알아보던 중 옆집 엄마가 생각났다.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반갑게 받아주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30분이 넘도록 공감해주고 조언과 함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러고는 어제 상가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우리.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에 나는 “아직 가정보육 중이에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녀 역시 미소지으며 “아이고 파이팅이에요!” 하면서 걸어가는데, 그 말에 그렇게 힘이 났다.


그땐 뭐가 그리 쑥스럽고 조심스러웠는지

지금 그분이 진짜 우리 옆집에 살고 있다면 참 좋겠다.

초인종을 누르면서 뭐하세요? 하고 놀러가 바탕 수다도 떨텐데.


애 엄마가 되고, 곳곳에 동지들이 생긴 것 같아 좋다.

처음 보는 엄마들과도 금세 공감하며 수다할 수 있고

바로 헤어지더라도 순식간에 힘을 얻고 위로를 나누니 말이다.


다음번에 옆집 엄마와 마주치면 용기 내어 커피 한잔 하자고 말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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